내년도 대학 등록금 인상률의 법정 상한선이 5.64%로 정해진 가운데 정부가 대학에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등록금을 동결해달라”고 요청했다. 소비자물가에 연동되는 등록금 인상 상한선이 5%를 넘긴 것은 제도가 도입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물가가 많이 올라 이미 재정난에 시달리는 대학으로선 등록금 인상이 절실하지만 15년째 이어지는 정부의 동결 요청에 난감한 처지다.
대학 관계자들은 정부의 요청을 실제로는 압박으로 느낀다고 한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교육부가 국가 장학금 등 각종 지원 사업과 연계할 뜻을 밝히며 동결을 요청하면 대부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물가 상승을 고려한 4년제 대학 실질 등록금은 2008년 대비 23.2% 줄었다. 대학의 미래 발전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 총장 등이 등록금 인상과 정부 지원금 수령 중 어느 것이 나을지 고민하면서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우리 대학의 현주소다.
우리나라의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세계 최하위권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64%로 미국, 영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더욱이 회원국 중 대학생 교육비가 초등학생보다 적은 나라는 그리스, 콜롬비아와 우리나라뿐이다. 초중고까지 많은 돈을 들여 잘 키워놓고 결실을 맺어야 하는 대학 때는 선진국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교육 환경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셈이다. 결국 정부가 돈도 제대로 쓰지 않으면서 등록금도 못 올리게 하는 것인데 당연히 글로벌 대학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오랜 등록금 동결의 여파로 대학은 인건비, 관리비를 충당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시설을 확충하거나 실험 실습비를 늘릴 엄두를 못 내는 실정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명과학대 실습실에는 첨단 현미경이 없고, 컴퓨터실에선 10년 넘은 프로그램을 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수두룩하다. 교육부가 대학 재정의 60%를 차지하는 등록금 문제를 틀어쥐고 있으면 대학은 옴짝달싹할 수 없고, 결국 스스로 혁신할 길을 개척하기도 어렵다. 경쟁력 있는 대학에는 등록금 결정 권한을 넘겨 교육 투자 재원을 마련하도록 하고, 어려운 학생들에겐 장학금을 대폭 늘려 교육 사다리를 튼튼히 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