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 감도는 외딴 마을의 저녁, 사방에서 들리는 스산한 바람 소리. 계곡물 깊어 눈은 쌓일 겨를 없고, 산은 얼어 구름조차 꿈쩍하지 않는다. 갈매기와 백로가 날아도 구별하기 어렵고, 모래톱과 물가도 분간되지 않는다. 들판 다리 곁엔 매화나무 몇 그루, 온 천지에 휘날리는 하얀 눈발.
외딴 마을에 묵으며 눈 내리는 저녁 풍경을 마주한 시인. 스산한 바람이 몰아치고 멀리 가까이 삼라만상이 휘날리는 눈발에 덮여 일체를 이룬 듯 백색 천지를 이루었다. 그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 시인의 섬세한 눈길. 계곡물로 떨어지는 눈발은 물길이 깊어서인지 쌓일 줄 모르고 산 위를 지나다 멈춰선 구름 떼는 추위에 발길이 묶인 듯 움직이지 않는다. 휘몰아치는 눈발 속을 나는 새가 갈매기인지 백로인지, 그 아래가 모래톱인지 물가인지 알 수 없고 매화나무에 매달린 게 꽃송이인지 눈송이인지조차 구별되지 않는다. 흰 눈으로 비로소 한 몸을 이룬 천지는 그리하여 가없이 광활하고 매화향이라도 번져올 듯 더없이 정갈하다. 설원을 향한 시인의 여유로운 정관(靜觀)에 공감한다면 올겨울엔 우리도 한 번쯤 풍성한 백설의 향연을 기대해 봄직하다.
홍승은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20여 년이나 과거에 연거푸 낙방하면서 일생 불우한 삶을 산 인물. 그가 남긴 시문이 적지 않지만 대표작은 역시 희곡 ‘장생전(長生殿)’이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했으되 현종이 사후 신선이 되어 재회하는 장면까지를 다룬 판타지 연극이다. 한때 이 연극은 선황(先皇) 모독이라는 혐의로 강희제(康熙帝)의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지속적으로 대중의 호응을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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