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은 위기의 달이었다[임용한의 전쟁사]〈296〉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일 23시 33분


1011년 1월 1일, 음력 날짜지만 거란 성종이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입성했다. 26년간 지속된 고려와 거란의 전쟁 중에서 수도가 함락된 유일한 날이었다. 거란군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철수했지만, 고려는 건국 초의 기록을 상실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이 참전해서 중부 전선까지 밀고 내려오자 정부는 다시 서울을 버리고 철수한다. 다 이겼고 통일이 목전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국민은 중공군의 개입과 한순간에 무너지는 유엔군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개전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것 못지않은 충격이었다. 게다가 이때는 겨울이어서 피란길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개전 초와 달리 이때는 북한에서 대규모 피란민이 같이 남하하면서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나라가 국방에 실패하면 국가가 사라지기도 하고 민족 자체가 소멸하기도 한다. 나라와 수도를 되찾는다고 해도 후유증이 수십 년, 수세대 이어진다. 고려는 결국 거란족을 몰아냈고 오히려 거란족이 국방의 실패로 소멸해 버렸지만 우리는 1000년을 지나 지금까지 생존하고 번영 중이다.

분단과 남북한의 대치 상태도 60년대, 70년대의 위기감은 많이 해소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새로운 위협이 등장했는데, 인구 감소로 인한 소멸 위기이다. 설마 국방력 소멸과 민족 소멸로까지 이어지겠나. ‘무슨 방법이든 대안을 찾겠지’라는 생각은 한다.

그러나 이 황당한 위기의 근원을 생각하면 그 믿음이 싹 사라진다. 산아 제한 정책이 도를 넘어서 한 자녀 낳기 정책이 탄생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고 분노하는 분들이 있었다. 인구가 경제, 산업, 교육, 국방에 미치는 요소를 정밀하게 고려하지 않고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예상도 못 한 정책이었다. 아마 훗날 역사가들이 탁상에서 만든 최악의 정책을 꼽는다면 1위권에 들어갈 정책이다.

그때도 혜안을 지닌 분들이 있었겠지만, 분명히 묻혔을 것이다. 이것이 권위주의, 관료주의 시대의 또 하나의 유산이다. 신년에 희망찬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세계는 전쟁 중이고 우리는 전쟁과 마찬가지의 위기 앞에 섰다. 2024년, 슬기롭게 마무리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1월#위기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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