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지진 마을엔 까만 잿더미, 곳곳 갈라진 도로
지구촌선 새해 첫날부터 인류 위협 재해 현실
2022년 3월 16일, 일본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입국 규제를 완화하며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닷새 만이었다. 당시 규모 7.3의 강진에 3명이 사망하고 5000채 가까운 집이 무너지거나 부서졌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11년 만에 같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의 충격은 작지 않았다. 무엇보다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 수습이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 긴장감이 더욱 컸다.
코로나19에 따른 입국 뒤 자가격리 조치로 호텔에 머물고 있던 기자는 비로소 ‘지진의 나라’에 왔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했다. 한밤중인 오후 11시 30분을 넘어 발생한 지진으로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배처럼 방이 출렁거리는 흔들림을 느꼈다. 그날 송고한 지진 1보 속보 기사가 도쿄 특파원으로 처음 쓴 기사였다.
한국에서 지진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기자가 종종 일본인 지인에게 흔들림을 감지한 경험을 얘기하면 “언제 지진이 났었냐”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지진 속보 시스템을 갖춘 일본에선 지진이 발생하면 TV에 긴급 속보가 자동으로 나간다. 하지만 규모 3∼4 정도 지진은 TV에 흘러가는 한두 줄 자막에 그친다. 연간 1000회 이상 크고 작은 지진이 나는 일본에서 약간의 흔들림은 일상이다.
그 정도로 지진에 익숙한 일본이지만 새해 첫날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은 열도를 바짝 긴장시켰다. 직선거리로 300km 이상 떨어져 있고 해발 3000m 산맥을 사이에 둔 태평양 연안 도쿄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됐다. 지진해일(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자 TV 진행자는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라” “지금 당장 도망가라”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라” “목숨을 소중하게 지켜라”. 흔들림을 느끼긴 했지만 다소 편한 자세로 보던 TV에서 나온 아나운서의 찢어질 듯한 고함은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마저 느끼게 했다.
다음 날인 2일,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과 화재 현장을 보며 왜 그토록 아나운서가 소리를 질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뿌리째 뽑혀 옆으로 풀썩 쓰러진 7층짜리 건물, 도시 한가운데 하얀 연기가 올라오며 까만 잿더미로 변한 집들, 휴지처럼 구겨지고 갈라진 아스팔트 도로 등 평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기, 수도가 곳곳에서 끊겼고 재해 지역 주민들은 모닥불에 고구마를 구워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이런 지진의 상처는 쉽게 낫질 않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후쿠시마현 후타바정(町)은 지금도 지역의 절반 이상이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귀환 곤란 구역’이다. 기차역이나 고속도로 나들목 근처 일부가 ‘부흥 거점’으로 지정돼 개발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차로 5분 정도만 벗어나면 풀썩 주저앉은 건물과 지붕 절반이 잘린 주택, 잡초가 무성해진 문 닫은 상점 등이 방치돼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에 따른 방사능 유출로 마을을 떠난 주민들은 지금도 객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이 언제 복구될지, 원전 폐로는 언제 마무리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시각각 늘어가는 사망자, 부상자 숫자를 보면서 자연재해가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한다. 자연재해 중에서도 가장 예측이 어려운 게 지진이라고 한다. 아무리 첨단 경보 시스템을 갖춘 일본도 피해를 완벽하게 예방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자연재해는 새해 첫날부터 현실로 나타났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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