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 첫날 아침에 바게트를 사기 위해 빵집에 들렀더니 벌써 쇼윈도에 갈레트(사진)가 등장했다. 집에서 가까운 이 빵집은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갈레트로 1등을 한 집이다. 갈레트는 주현절(1월 6일) 하루 전날에 먹는 음식으로 페이스트리 안에 아몬드가 들어간 프랑지판 크림을 넣어 만드는 원형 모양의 빵이다. 주현절은 성탄절보다 더 오래된 가톨릭의 기념일로 동방 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그리고 몰약을 예수께 가져와 경배를 드렸던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탄 후 13일째 되는 날을 주현절로 정하여 기념한다. 프랑스인들은 성탄절부터 가족 모임을 시작해서 연말 연초 많은 모임을 갖는데, 12일간의 연회와 잔치의 절정은 주현절을 피날레로 마무리된다. 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직전에 2주간 방학을 하고 보통은 직장인들도 같은 시기에 1주 정도 휴가를 내어 자신들의 별장에 가거나 시골 부모님 댁에서 가족과 함께 성탄과 새해를 맞는다.
이번 성탄절을 맞아 우리 가족은 파리에서 300여 km 떨어진 셰르부르 근처에 있는 프랑스 친구의 별장에 가서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느지막이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오후에는 숲이나 해변을 걷거나 책을 읽고 오후 7시가 되면 한 식탁에 모여 샴페인 한잔을 마시는 것으로 저녁 식사를 시작해서 보통 밤 12시가 되어서야 식사가 마무리된다.
보통 10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내겐 마라톤과 같이 길게 느껴지는 저녁 식사는 여전히 익숙지 않다. 프랑스인들에게 식사란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가 아니다. 잘 모르는 사람과 밥을 먹자는 의미는 정말 친해지고 싶다는 표현이다. 프랑스인과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는 길게 심호흡부터 하고 오늘 식탁 위에서 펼쳐질 다양한 주제에 대해 미리 생각해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차이 등등 무궁무진한 프랑스인들의 대화 주제를 들으며 맞장구를 치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어찌 됐든 크리스마스부터 시작된 무거운 저녁 식사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음식이 갈레트다. 갈레트의 정식 명칭은 ‘갈레트 데 루아’, 직역하면 ‘왕의 갈레트’로 여기서 왕은 앞서 설명했던 동방 박사를 의미한다. 프랑스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갈레트를 처음 먹었을 때의 뼈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빵집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납작하게 생긴 이 빵을 너도나도 사길래 나도 덩달아 집어 들었는데 점원이 계산 후에 종이로 된 왕관을 건넸다. 이 빵을 먹는 이유 중 하나가 가정에서 오늘의 왕을 뽑는 일이며 빵 안에 페브(féve)라는 작은 세라믹 도자기가 들어있다고 했다. 식구들에게 이를 설명하고 ‘내가 집어 든 빵에는 페브가 없겠지’ 하고 혼자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빵을 세게 물었다가 어금니 한쪽에 금이 가고 말았다. 잠시 왕이 되는 기쁨을 누리기는 했으나 치과에 가야 하는 성가신 영광이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 일이 있던 해에 가정에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비록 깨진 이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며칠 후 다가올 주현절이 왠지 기다려지는 이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