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컴백을 기다리다 (지쳐) 욕과 함께 원망하는 내용을 남긴 팬의 글을 봤다. 웃었던 기억이 난다. ‘누가 내 욕을 이렇게 살벌하게 써놨지’ 싶었다. 재밌었다.”
매년 봄, 벚꽃이 필 무렵이면 떠오르는 노래 ‘벚꽃엔딩’의 주인공 가수 장범준이 지난해 12월 2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한 말이다. 오랜 공백기를 갖고 있는 그의 컴백을 기다린 한 팬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욕설을 써가며 ‘장범준, (날) 고소해. 경찰서에서 얼굴이라도 보게. 내가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는 내용의 글을 올려 화제가 됐고, 이에 대해 장범준이 내놓은 반응이었다.
장범준은 팬의 거친(?) 요청에 화답하듯 이달 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매주 화·수·목요일에 10회에 걸쳐 평일 소공연을 열겠다고 밝혔다. 2년여 만에 열린 그의 공연이라 티켓은 오픈 10분 만에 전석 매진됐고, 곧바로 암표가 기승을 부렸다. 결국 장범준은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공연 티켓 예매분을 전부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며 콘서트 계획을 잠정 취소했다.
장범준뿐만 아니다. 아이유, 성시경을 비롯해 많은 가수들이 암표와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유는 암표 거래를 신고한 팬에게 티켓을 포상하는 ‘암행어사 제도’를 도입했고, 얼마 전 연말 콘서트를 연 성시경은 1인당 1장만 구매 가능한 현장 판매를 진행하는 등 불법 거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소속사 측은 그의 공연이 일명 ‘효도 콘서트’라 불리며 암표시장에서 티켓이 고가로 거래되자 “예매 시작과 동시에 수백만 원에 판다는 공고를 내는 암표상들이 등장해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공연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며 “불법 거래로 간주되는 예매 건에 대해서는 사전 안내 없이 바로 취소시키며 강력하게 대응 중”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가짜 표도 등장했다. 연말 SBS 가요대전을 앞두고 조직적인 가짜 표 판매가 일어난 것이 적발돼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다.
가수와 소속사, 공연 관계사 등이 이렇게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데에는 온라인 암표 거래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온라인을 통한 암표 거래는 제재할 법 규정이 없다. 그나마 오프라인에서 거래한 암표의 경우에 한해 경범죄처벌법 제3조에 따라 20만 원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의 가벼운 처벌에 그친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해 올 3월부터 ‘정보통신망에 주문 명령을 자동으로 반복 입력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입장권 등을 부정 판매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의 개정 공연법이 시행된다. 하지만 가요계에선 “매크로(자동 반복 수행)를 이용한 암표만 처벌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일일이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3월 대만에선 K팝 걸그룹 블랙핑크의 월드투어 현지 공연 암표 가격이 정가의 45배까지 치솟으며 한화로 약 1734만 원에 거래돼 논란이 일었다. 초고가 암표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지난해 5월 입법원(국회)이 암표 판매에 최대 50배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암표 거래는 팬심을 악용해 산업구조를 무너뜨리는 불법 행위다. ‘K팝의 본고장’이라는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불법 암표 거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엄중한 단속과 처벌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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