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등 5공 소재 영화 나올 때마다
좌파는 자신들이 민주화 주역인 양 견강부회
진짜 주역은 이제 50대 후반∼70대 된 젊은이들
그들이 좌파정치권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는가
우리 사회에는 거대한 허구의 프레임이 존재한다. 그것은 진보·좌파·야당이 민주화의 주역이었으며 적자(嫡子)라는 프레임이다. 여기에 여당에서도 별다른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 ‘서울의봄’ 같은 5공화국 소재 영화가 나오면 움츠러든 채 “민주화는 산업화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식으로 말을 돌리는 게 전부다. 민주화의 대주주는 당신들이라고 접어주고 들어가는 것이다. 과연 온당한 일인가.
우리 사회에서 반(反)독재 민주화 투쟁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87년 6월 항쟁까지 10여 년에 걸쳐 진행됐다. 물론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민족 통일 양성평등 등 다양한 주제의 투쟁이 민주화 슬로건을 내걸고 펼쳐졌지만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 투쟁은 87년까지였고, 절대적 기준에서의 독재정권은 6·29선언으로 종식됐다. 이때를 기점으로 우리사회는 절대적 선악이 대립했던 시기에서 상대적이고 진영에 따라 선악이 구분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 민주화 성취의 대(大)주주는 70년대 중후반 대학 캠퍼스에서, 79년 부산 마산 등에서, 80년 5월 광주에서, 80~87년 대학과 도심에서 민주주의와 독재 타도를 외친 학생과 시민들이다. 이들은 1950년대 중반~1968년 출생이며, 대학 입학 학번으로는 70년대 중반 학번에서 87학번까지가 주를 이룬다.
유신 철폐 투쟁을 벌였던 젊은이들은 이제 60대 중후반~70대, 6월항쟁 때 도심을 메운 대학생들은 56세~60대 초중반, 넥타이 부대 직장인들은 60, 70대의 장년기 후반과 노년층이 됐다. 즉 현재 50대 후반부터 60대, 70대 이상 시민들이 군사독재 종식의 주역인 것이다.
이들이 현재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는지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통계는 이 연령대 시민 중에 문재인 정권 당시 정책 방향에 우려하고, 조국 장관과 586 정치인들의 후안무치 행태에 분노했던 사람들이 다수였음을 보여준다.
문 전 대통령, 이재명 대표를 필두로 상당수 야당 정치인들이 ‘서울의봄’을 관람하고 자신들이 민주화의 적통(嫡統)을 잇는 세력이라는 뉘앙스를 담은 반응을 보였지만, 정작 민주화 성취의 주역 중에는 현재 좌파 진영 정치인들을 민주화의 적통으로 인정하기는커녕, 그들의 행태를 보며 독재정권에 분노했던 젊은 시절의 그 정의감과 분노가 다시 끓어오르는 심정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 성취의 두 번째 주주인 정치권을 보자.
양대 기둥이었던 YS와 DJ 진영의 후예들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으로 나뉘어 포진해 있으니 민주화 지분은 여야가 반반씩 나눠 갖고 있다. 보수진영은 1990년 3당 합당의 굴레를 썼지만, 5공 인물들은 민자당 시절 재산공개 등의 과정을 거치며 대부분 도태돼 오래전부터 국힘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세 번째 주주는 학생운동 지도부다. 지금 민주당 의원 중 운동권 출신이 60명이 넘는데 그들중 80년대 주요 대학 총학생회장 등 지도부급 대열에 섰던 인물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게다가 당시 학생운동의 실제 지도부는 반미청년회 구국학생연맹 등 지하조직이었다. 그런데 구국학생연맹 의장으로 NL(민족해방)계의 총책이었던 강철서신 저자 김영환을 비롯해 당시 핵심 인물들 중 상당수는 좌파에 대한 비판자로 변신했다. 80년대 학생운동의 실질적 리더 중 상당수가 좌파를 등진 것이다.
그런데도 전체 민주화 성취 공훈에서 일부분에 해당하는 야당 소속 586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민주화의 최대 주주인 것처럼 행세하고, 하물며 80년대 민주화 투쟁기에는 아무런 족적이 없는 이재명 추미애 같은 이들마저 남의 집 안방 주인 행세처럼 숟가락을 놓는 게 현실이다.
이들이 12·12를 소재로 한 영화를 놓고 퍼뜨리는 주장의 요점은 하나회 군부의 쿠데타와 윤석열 검찰의 조국 장관 수사를 동일 선상에 놓아 ‘검찰 쿠데타’로 낙인찍는 것이다. 물론 이는 흑과 백, 도둑과 피해자를 뒤바꾸는 선동이다.
79년 12월의 충돌이 헌법을 유린한 불의(不義)한 쿠데타 세력과 이에 맞서 직분을 지키려한 군인들과의 대결이었다면, 문 정권 때 헌법이 규정한 사법기관의 직분 수행을 억눌러 정권 핵심의 비리를 덮으려던 불의 세력은 바로 청와대와 추미애 등이었다.
하나회 군부가 동원한 수단이 탱크와 압도적 병력이었다면, 문 정권이 동원한 무기는 인사권과 홍위병 나팔수들이었다. 군사 쿠데타가 헌법을 유린하는 반국가 행위이듯이, 정권이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국가 사법기관에 압력을 행사해 수사를 못하게 하는 것 역시 반국가적 행위다.
586이라는 용어는 변질됐다. 원래 386세대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는 ‘모래시계 세대’ 등의 표현과 더불어 격동의 80년대를 거쳐온 세대를 가리키는 표현이었는데, ‘운동권 생활과 정치권이 인생 경력의 전부인 좌파 정치인’을 뜻하는 협소한 용어로 시나브로 변질됐다.
따라서 민주화 성취의 진짜 주역인 80년대 당시의 젊은이들은 ‘6월 항쟁 세대’라 부르는 게 맞다. 이들 대부분은 젊은 시절 민주화 시위 참여를 거쳐 기업 관계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경제의 선진화 일류화에 중추 역할을 했다. 민주화의 대주주인 동시에 선진국 도약의 허리였던 것이다.
이들 세대 중에는 젊은 시절 전두환 군부에 분노했듯이 근래 좌파 정치인들의 행태에 분노하는 이들이 많다. 그 이유는 정치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낡은 이념을 벗지 못한 채 민주화에 친북 친중 반시장 반기업을 덧씌워버린 이념적 화석화, 운동권 경력을 훈장 삼아 수십 년간 특권을 향유하는 도덕성 결핍, 자신과 경쟁하는 정파를 악으로 몰아붙이는 오만과 유아독존의 낡은 사고방식이 분노를 유발한 것이다.
586의 뻔뻔함, 그리고 그들의 견강부회 앞에서 찍소리 못하는 여당 인사들을 바라보며 민주화의 진짜 주역들은 기가 막힐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