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흉기 피습 이후 정치권에 구체적인 자성(自省) 움직임이 시작됐다. 국민의힘은 공천 희망자의 과거 막말이나 증오 발언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공천심사 기준을 구체화하고 있다. 민주당도 국민 분열적 발언 여부를 공천 기준의 하나로 삼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팬덤 정치에 기댄 오염된 정치 언동이 흉기 테러의 뿌리였음을 인정하고,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언어를 바꾸는 노력에 여야가 시동을 걸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품격 있고 절제된 언어로 정치를 바로 세우는 일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치적 증오를 조장하고 폭언을 일삼는 정치인들에게서 미래 비전이나 사회 통합을 기대할 수 없지 않은가. 반복된 저질 발언에는 그럴 만한 동인(動因)이 있다. 언동이 자극적일수록 온라인 공간에서 더 주목받는 반면 별다른 불이익은 없다. 국회 윤리위에 상대 당 의원들을 수없이 회부시키지만 그때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윤리위에서 막말 징계는 1차례도 없었다. 제도만 그럴듯할 뿐 서로 눈감아주는 문화가 국회를 지배했다. 어른이 사라진 정치권에서 자기 진영을 향한 질책이나 반성도 사라졌다.
그 결과가 알고리즘이 골라 주는 비슷비슷한 정치싸움 동영상에 과몰입한 경계인의 야당 대표 테러다. 이제 정치인들은 ‘막말하면 진짜 손해’라는 걸 체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누구에게 미룰 일이 아니다. 한동훈, 이재명 등 두 정당 책임자가 직접 주도해야 한다.
증오의 언어를 공천에서 배제하는 일은 여야 합의도, 법률 제정도 필요치 않다. 뜻만 있다면 누구든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있다. 여야는 곪을 대로 곪은 당내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정치 개혁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실체가 불분명한 추상적 혁신을 늘어놓는 것보다 막말에 대한 공천 배제 원칙이야말로 손에 잡히는 혁신이다. 막말의 강도에 따라 공천 배제와 경선 불이익 등 기준을 마련하고 이행하길 바란다. 또 그 결과를 선거 1개월 전에 발표하고 유권자 평가를 받으면 더 좋다.
공천 배제, 경선 불이익 등 과하다 싶은 조치가 불가피하다. 고강도 처방이 안 나오면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왜 정치를 하는지 이해 못 할 정치인들의 분탕 때문에 공론의 장이 망가지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다. 유권자의 눈높이에 못 미치는 선출직 공직자는 유권자의 힘으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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