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은 4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10년 후 대한민국을 위한 제안’을 발표하며 “국가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저출생 문제 해결을 헌법에 못 박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발표문 8556자 중에서 인구절벽의 위기를 강조하며 저출생 해법을 언급한 내용이 첫 대목부터 5000자 넘게 이어졌다. 국회의장이 신년 간담회에서 직접 저출생 문제를 강조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임기를 5개월가량 남겨놓은 김 의장의 신년사에선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1987년 이후 멈춰버린 개헌 논의는 대통령제 권력 구조를 둘러싼 정치권의 이해관계 탓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헌법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제기됐지만, 이런 논의를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동력도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김 의장이 새해 화두로 던진 ‘저출생 개헌’은 한 번쯤 고민해 볼 만한 이슈였다. 다만 9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비롯해 ‘김건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 이른바 쌍특검법을 둘러싼 팽팽한 여야 대치 정국이 펼쳐져 있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상황에서 저출생 개헌 주장은 어쩌면 한가한 소리처럼 들렸을지 모른다.
김 의장의 주장이 실제 개헌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데도 김 의장의 저출생 개헌 주장을 마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인구절벽의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저출생 위기에 대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구난방식 대책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것만 증명됐다”며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인구절벽의 문제를 심각한 국가 위기 상황으로 상정해 장기 과제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첫 번째 국가 과제로 보육과 교육, 주택 등 인구 감소 정책을 개헌안에 명시해 국민투표를 통해 정해야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고 일관된 정책 수단과 재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병력 감소와 노동력 부족, 긍정적인 이민 정책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발표문 중에선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6일 국무회의에서 “저출산 문제를 더욱 엄중하게 인식하고 원인과 대책에 대해 그동안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직접 인구절벽 위기 상황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만큼 국회의장이 제기한 특단의 대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만큼은 힘을 합쳐야 한다. 저출생 문제처럼 여야 모두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국가적 과제는 많지 않다. 대통령이 앞장서고, 국회에서 여야가 합심해 국가적 정책을 완성하는 것만큼 국민이 바라는 모습이 또 있을까. 개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저출생 문제와 관련한 해법을 여야가 함께 마련할 수 있길 기대한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극단적 ‘증오 정치’가 확산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가 정치권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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