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보병과 민주주의[임용한의 전쟁사]〈297〉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8일 23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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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정의 근원을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찾는다. 이미 노예도 있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도 커졌던 시대였지만, 적어도 자유민 남자에게는 참정권과 투표권,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다. 여성에게 참정권을 제한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인권, 법적 보호, 소송권까지는 보장했다. 노예는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간 취급을 하긴 했지만, 사람 이하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말 “노예는 살아 있는 도구”라는 말을 인간을 도구 취급하자는 말로 이해하는데, 원뜻은 노예의 권리는 제한하지만 그들도 인간이니 도구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실상을 나열해 놓으면 민주적이 아니라 차별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지금부터 2700년 이전의 세상이라는 점을 감안해 주어야 한다. 특히 대단한 부분은 참정권에 차이가 있었다고는 해도 가난한 시민에게도 최대한 권리를 부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오랫동안 오해가 있었다. 그리스 민주정이 중장보병대를 형성하는 부유한 시민층에 의해 탄생했다는 설이다. 중장보병의 장비를 갖추려면 아마 지금도 최하 수천만 원 이상 억대까지 올라갈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가난한 시민은 민주적 권리에서 소외되었다는 오해가 생겼다.

중장보병 전술이라고 해서 중장보병 홀로 싸울 수 없었다. 경보병, 궁수, 투석병에 보조 인원까지 다양한 인력이 필요하다. 서로 협력하며 함께 싸워야 했다. 역할과 대우에 차이는 있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물론 역할과 대우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 전투에서도, 사회에 돌아와서도 그랬다. 갈등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벌어지면 함께 싸우고, 감당할 수 없는 적을 만나면 역할을 조정하고 시민적 특권을 양보할 때 민주정은 승리하고 번창했다.

반대로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심지어 외국 군대까지 끌어들이고, 부자든 빈자든 승자가 정의가 되고 패자의 생명과 재산을 강탈하게 되면서 그리스 민주정은 소멸했다.

고대의 민주정과 현대의 민주주의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변치 않는 진리는 있다. 탐욕과 증오를 다스리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괴물이 된다.

#중장보병#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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