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 방송 LCI가 태극기의 태극 문양을 빨간 원으로 잘못 그려 방송해 비판을 받았다. 한국 정부가 엄중하게 항의해 방송사는 유감을 표하고 관련 영상을 삭제하며 사태는 마무리됐다. 한 방송사의 단순 실수로 보일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만 최근 1년 정도 사이에 비슷한 사례를 잇달아 접해 마음이 무겁다.
지난해 8월 2024 파리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에 뜬 홍보 이미지에서도 태극기는 존재감이 없었다. 에펠탑 앞에서 세계 각국 선수단과 관람객이 자국 국기를 흔드는 풍경 속에 일장기는 40여 개에 달했고,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는 대여섯 개 등장했다. 한국도 엄연한 올림픽 참가국이지만 이 홍보물 속에 태극기는 아예 없었다.
국기뿐 아니라 국가원수도 얼마 전 잘못 보도된 적이 있다. 르몽드, 리베라시옹과 함께 프랑스 3대 유력 일간지로 꼽히는 르피가로는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모습을 영상으로 내보내며 엉뚱한 공무원 이름을 달았다. 사진 설명에선 대통령 대신 국무총리라고 표기했다. 참사 소식 자체도 국가의 관리 소홀을 드러내 부끄러웠는데, 대통령까지 두 번이나 잘못 보도되니 국가의 존재감이 이리 약한가 싶어 더욱 민망했다.
개별 사례만 놓고 보면 단순 해프닝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워낙 영향력 있는 유력 방송과 신문, 그리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공식 기관에서 오류가 반복되니 그냥 덮을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최근 1년여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국제박람회기구(BIE) 본부가 있는 파리에서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해 각종 한국적 행사를 동원해 홍보에 공을 들였던 참이다.
K팝 열풍 덕에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자화자찬이 많지만 우리가 허상만 보고 위안을 삼고 있진 않은지 자성하며 공공외교의 내실을 점검해볼 때다. 공공외교란 외국인들과 직접 소통하며 국가의 역사, 전통, 문화, 가치 등을 알리고 신뢰를 얻어 외교 관계를 증진시키는 외교활동이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에서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K팝, K드라마를 넘어서 한글과 한국학, 전통문화와 역사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학계나 기업인들은 한국을 진지하게 배울 기회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해외의 한국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걸림돌은 없는지 살피고, 있다면 이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프랑스에선 한글 학습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신규 한글학교를 설립하려면 정부의 인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들린다.
정부의 공공외교 방식도 해외 주요 인사와 기관에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부산엑스포 홍보 기간에는 파리에서 한국 정부나 기업 주재원이 많이 거주하는 15구에 홍보물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유치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요국 외교 인사들이 드나드는 샹젤리제 거리 등에 홍보물을 집중시킨 것과 대조적이었다. 정부가 이런 부분을 개선하지 않으면 정책 성과만 드러내려는 ‘서울을 향한 외교’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공공외교를 주도할 때도 필요하지만 개인, 시민단체, 기업,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여러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효과적이다. 그래야 해외의 다양한 오피니언 리더들이 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한국을 받아들이고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이번 부산엑스포 유치전 막판에도 정부 외에 기업은 물론이고 파리의 풀뿌리 단체와 인사들이 기존 네트워크를 활용해 우호 세력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긴 호흡과 다양한 접근으로 공공외교에 공을 들여야 앞으로 다른 국가적 행사를 유치할 때 그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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