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을 걷다 보면 가끔 호수를 만나게 되는데 내려오는 전설이 비슷하다. 고승이 못된 부자를 혼내기 위해 집이 있던 곳을 호수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거야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가끔 착한 며느리가 등장해 슬픈 스토리를 만든다. 고승이 착한 며느리에게 미리 피하라고 하면서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지만 그 착한 마음이 어디 가겠는가. 안타까움에 뒤를 돌아보다가 돌이 되고 만다.
신화나 전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본질적인 지혜를 담고 있는데,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는 교훈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리스 신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노래 잘 부르고 악기 잘 다루는 오르페우스가 그 주인공인데, 결혼한 지 며칠 만에 아내를 잃어, 그 마음을 노래하고 연주하자 동물들은 풀을 뜯으려 하지 않았고 신들까지 애통해할 정도였다. 보다 못한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저승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고, 저승의 신 하데스 역시 그 마음에 감동해 아내를 데리고 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죽은 자와 산 자는 눈길을 나누지 못하니 하데스의 땅을 벗어날 때까지는 뒤를 따르는 아내 에우리디케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부가 있겠는가. 하지만 저 멀리 빛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고 만다. 다 왔다 싶기도 하고 잘 따라오나 싶어 무심코 돌아보았다가 아내를 다시 지하 세계로 떨어지게 한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롯의 아내 역시 소돔을 떠날 때 뒤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말았다.
무심코 하는 것과는 달리 결과는 너무나 엄청난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도 무심코 찾아든다. 술 마시고 비몽사몽인 정신으로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해 횡설수설하는 것도 그렇고, 몸은 자리를 물러났는데 마음은 그러지 못해 그곳을 배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거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결국 내 발등을 찧게 된다. 인연이 아니거나 끝났다면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인사 이동이나 불합격의 후유증을 감당해야 할 요즘 같은 때는 더더욱 그렇다. 불청객 불행 역시 이런 마음을 노리니 말이다. 오래전 록그룹 오아시스도 그랬지 않은가. 화난 얼굴로 뒤돌아보지 말라고(Don’t look back in anger).
심사숙고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거나 그 일을 시작했을 때도 그렇지만, 하루하루를 가까스로 버티고 있을 때도 조심해야 할 게 뒤돌아보고 자책하는 것이다. 하면 할수록 내 마음만 아프고 나만 손해다. 미래는 앞에 있지 뒤에 있지 않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세상에 닿아 보면 알게 된다. 정말이지 온 마음을 뒤흔들던 것들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거나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새해다. 앞을 보고 걸어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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