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지어진 지 30년이 지나면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게 하겠다고 어제 정부가 밝혔다. 이렇게 되면 사업기간이 지금보다 최대 6년 단축되고 2027년까지 전국에서 95만 채의 재건축·재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소형 빌라와 오피스텔,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사면 세금을 깎아주고,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도 폐지하겠다고 했다.
‘1·10 공급 대책’의 핵심은 정비사업을 활성화해 도심 내 신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이던 안전진단은 사업시행인가 전까지로 미뤄져 정비사업의 초기 속도가 빨라지게 됐다. 재개발 추진의 기준인 노후도 요건(준공 30년 이상 건축물 비율)도 완화한다.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은 현 정부 임기 내 착공해 2030년 첫 입주를 할 수 있도록 공급 시간표를 앞당겼다.
주택 공급에 속도를 높여 향후 수급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공사비 인상, 고금리 등으로 멈춰진 사업장이 많은 상황에서 당장 공급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그렇다고 추가로 규제를 풀었다간 향후 과잉 공급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국회의 협조도 관건이다. 안전진단 시점을 늦추고 조합 설립 시기를 앞당기는 등 재건축 절차를 조정하려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쏟아내면서 투기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어제 윤석열 대통령은 “재개발·재건축에 관한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 “주민들이 집합적인 자기 재산권을 행사하겠다는데 그것을 가로막는다면 정부도 한심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다분히 총선을 의식한 발언으로 읽힌다.
부동산 시장의 왜곡을 막기 위해 불합리한 규제는 합리화해야겠지만 그렇다고 규제를 한꺼번에 마구 풀었다가 자칫 집값 불안의 불씨를 키울까 우려스럽다. 여러 지역에서 재건축 사업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순차적인 공급 전략을 준비하고 비아파트 규제 완화에 따른 난개발에도 대비해야 한다. 당장의 선거가 아니라 전체 시장의 안정을 고려한 거시적이고 합리적인 부동산 정책의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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