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처럼 번뜩이는 병주(幷州) 과도, 눈보다 고운 오 지방 소금, 갓 익은 귤을 까는 섬섬옥수. 비단 장막 안은 이제 막 따스해지고, 향로에선 쉼 없이 향훈이 번지는데, 마주 앉아 여인은 생황(笙簧)을 연주한다. 낮은 목소리로 묻는 말. “오늘 밤 어느 곳에서 묵으실는지? 성안은 이미 야심한 삼경, 서릿발에 말이 미끄러질 터니 차라리 쉬었다 가시는 게 좋겠어요. 길엔 나다니는 사람도 드물답니다.”
시가 정중하고 엄숙한 분위기라면 사(詞)는 경쾌하고 자유분방하다. 시가 사대부 문학의 정수라면 사는 연회나 주루(酒樓)의 여흥 분위기를 돋우는 유흥 문학의 성격이 강하다. 가사의 속성상 근엄한 메시지보다는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써야 호소력이 더 도드라지는 법이다. 노랫말에 고답적인 삶의 이치나 인간의 도리 따위를 담는다면 누가 반기겠는가.
이 작품은 사의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연인 사이인지 아니면 주루에서의 하룻밤인지는 알 수 없다. 비단 장막을 두른 것으로 보아 이 방의 주인은 아마 여인, 갓 익은 귤껍질을 벗기는 섬섬옥수의 주인공이겠다. 잘 드는 과도와 백설 같은 소금을 준비한 것으로 보아 시고 쓴맛이 도는 귤 위에 살짝 소금을 칠 모양이다. 길상(吉祥) 동물 형상의 향로에 향을 피우고 생황 연주까지 곁들였으니 그 대접이 여간 곡진하지 않다. 급기야 나지막이 건네는 한마디. ‘야심한 데다 서릿발로 길이 미끄러우니 쉬어가시라.’ 배려인 듯 애소(哀訴)인 듯 여인의 농염한 유혹에 밤이 무르익고 있다. 송 휘종(徽宗)과 기녀 이사사(李師師)의 밀회 장면을 묘사한 거라는 믿기 어려운 야사의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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