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제게 ‘1, 2학년 제대로 나온 것 맞냐’고 말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엄마는 책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었다. 얼마 뒤 교사가 아이에게 “구제 불능”, “쟤가 맛이 갔어” 등의 발언을 한 것이 고스란히 녹음됐다. 이에 엄마는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1, 2심에서는 교사에게 유죄가 선고됐지만 대법원은 11일 원심을 파기했다. 녹음파일을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형사재판에서는 아무리 결정적인 증거라도 적법하게 수집하지 않았다면 유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녹음파일의 경우 대상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라면 증거로서의 가치가 사라진다. 먼저 ‘타인 간의 대화’인지를 놓고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갈렸다. 원심은 “녹음자(엄마)와 대화자(아들)를 동일시할 정도로 밀접한 인적 관련이 있다”는 이유에서 증거능력을 문제 삼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모라고 해도 직접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이상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는 취지다.
▷다음 쟁점은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한 발언이 ‘공개된 대화’에 해당하는지였다. 원심은 교실에서 30명 정도의 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공개적인 대화라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수업은 학생들에게만 공개되는 것일 뿐 불특정 다수가 듣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비공개 대화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유·무죄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지만, 유죄 판결의 핵심 증거가 효력을 잃음에 따라 교사에게는 유리한 결과가 됐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몰래 녹음이 이뤄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하소연한다. 일부 학생은 첩보영화에나 나올 법한 펜형·목걸이형 녹음기를 차고 등교한다고 한다.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앱을 자녀의 스마트폰에 깔아서 수업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은 학부모도 있었다. 이를 근거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이 사건이나 웹툰 작가 주호민 씨 아들 사건처럼 법정 다툼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비슷한 소송에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기준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몰래 녹음한 파일의 증거능력이 쟁점인 사건은 여럿 있다. 대법원은 아내가 남편의 불륜을 의심해 남편 모르게 통화녹음 기능을 활성화한 결과 녹음된 파일이라고 해도 부부간에 통화한 내용은 형사재판의 증거로 쓸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증거 수집 절차가 사생활이나 인격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해 사회 통념상 한도를 벗어난” 경우라면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부분은 의미가 있다. 사건의 실체 입증이 다소 어려워지더라도 증거의 적법성을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 절차의 정의를 중시하는 사법제도의 발전 방향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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