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의무휴업, 골목상권 아닌 온라인 매출 키워
휴업일 평일로 조정하니 전통시장 매출도 늘어
소비자 만족 높은 ‘주말 영업-평일 휴업’ 정착을
작년 말 서울시 주민들은 ‘마트 없는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해야 했다. 매월 2차례 의무휴업을 강제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둘째 주, 넷째 주 일요일에 서울 시내 대형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 총 228개 점포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영업시간 외에는 온라인 배송도 금지된다. 크리스마스 선물과 먹거리를 사러 갔던 시민들은 헛걸음만 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대형마트가 휴업한 것은 2016년, 2017년, 2022년에 이어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2012년 이른바 ‘골목상권’이라고 불리는 중소유통 보호를 목적으로 시작된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는 어느덧 10년이 훌쩍 지났다. 규제가 도입될 당시와 비교해 볼 때 유통은 참 많은 것이 변했다. 현재는 온라인 유통이 소매업의 최강자로 자리 잡았고, 새벽배송·당일배송·퀵커머스 등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편의점·식자재마트·개인대형슈퍼마켓은 소매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유통채널의 혁신과 경쟁이 가속화된 상황에서, 대형마트에 대한 낡은 규제책이 더 이상 존속할 필요성은 어디에 있는가?
통계청 데이터를 살펴보면 규제로 인한 대형마트 매출이나 시장점유율 감소분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넘어갔고, 대형슈퍼·식자재마트나 편의점으로도 일부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2022년과 그 이전 10년을 기준으로 보면, 대형마트 매출액은 34조 원 수준으로 거의 변동이 없는 반면에 무점포 소매(온라인 쇼핑 등)는 37조 원에서 124조 원 규모로 237% 급성장했다. 같은 기간 편의점 역시 188% 성장했고, 식자재마트 등도 마찬가지다. 역설적으로 규제로 인한 혜택을 기대했던 전통시장의 마켓셰어는 오히려 감소했다. 즉, 대형마트 규제의 반사이익은 기존 골목상권이 아니라 대형 온라인 플랫폼 등이 가져간 것이 분명하다.
결국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는 10년 동안 중소유통 보호라는 목표 아래 대형유통, 납품업체, 임대상인 그리고 주인인 소비자가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구조다. 그런데 중소유통 보호 효과까지 없다면 이 규제는 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이었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는 대형유통과 중소유통 간 경쟁이었지만 지금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간 경쟁, 상권과 상권 간 경쟁으로 바뀌었고, 온라인 유통의 급성장은 대형마트나 전통시장, 골목상권을 막론하고 유통채널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통 구조, 소비 형태, 경쟁 관계 등 모든 것이 변했는데, 낡은 규제만 고집하는 것은 이젠 바꿔야 한다. 과거의 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 서로 협력하여 지역상권을 활성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유통채널의 경쟁관계가 통째로 바뀐 세상에서 중소유통과 소상공인의 활로는 정책당국에서 진흥책을 통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지만, 팩트에 근거한다면 기존의 대형마트 규제 정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효과 없이 수명을 다한 기존 규제를 크게 손볼 때가 됐다. 앞으로의 10년은 유통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쟁함으로써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내수시장 확대 같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대구, 충북 청주시에 이어 서울 서초구, 동대문구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소상공인들의 의견을 재수렴해 휴무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각 지자체가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는 것은 지역상권의 심각한 침체 속에 상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필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지역 상인들이 상권 활성화를 위해 대형마트의 집객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구시가 일요일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후 6개월간의 지역상권 매출액을 분석한 결과, 소매업(19.8%), 전통시장(32.3%), 음식점(25.1%) 등 대형마트 주변 소상공인 매출이 동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비자 만족도는 87.5%에 달했다고 한다.
사실 의무휴업 규제 논의가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이유는 대형유통을 규제해야 소상공인 표를 얻을 수 있다는 정치권의 낡은 의식구조 때문이다. 이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의무휴업 규제는 오프라인 전체에 공통의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대형-중소유통 간에 어렵사리 상생 합의를 이룬 온라인 영업규제 개선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결국 폐기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아쉽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 유통정책의 주인은 소비자여야 한다. 대형이든 중소이든 유통업계는 이해관계자일 뿐이다. 즉, 유통정책은 소비자를 향해야 한다. 다가오는 총선에서는 소비자 주권을 분명히 행사해야 할 것이다. 22대 국회에서는 유통산업발전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소비자 중심의 새로운 법과 제도를 조속히 마련할 것을 기대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