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로 여행 가면 ‘7분간의 신칸센 극장’을 볼 수 있다. 고속철 신칸센이 도쿄역으로 들어오면 12분간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한다. 청소 용역업체는 승객들의 승하차 시간 5분을 뺀 7분 동안 청소를 한다. 그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보여 신칸센 극장이란 별명이 붙었다.
1개 팀이 22명으로 이뤄져 있는데, 한 사람이 약 100석의 열차 한 칸을 맡는다. 좌석과 앞주머니의 쓰레기를 바닥에 떨어뜨려 쓸고, 좌석을 출발 방향으로 돌리며 등받이 테이블을 펴 헝겊으로 닦는다. 창틀 오물도 제거하고 승객 분실물까지 체크하며 더러워진 좌석 커버도 교체한다. 작업량이 꽤 많은데, 어떻게 7분 만에 끝낼 수 있을까.
도쿄 특파원 시절 신칸센을 탈 때마다 꼼꼼하게 지켜봤더니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대부분 승객들이 자리에 쓰레기를 남기지 않았다. 하차하러 일어서면 의자 등받이를 예외 없이 제자리로 맞췄다. 청소부들이 마법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승객’이란 훌륭한 조연 덕분에 가능했다.
2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일어난 여객기 사고를 보면서 신칸센 극장이 떠올랐다. 사고기에 탔던 승객이 찍은 영상에 긴박했던 당시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일본항공(JAL) 여객기가 착륙 도중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충돌한 후 3분 정도 지나 멈춰 섰다. 기내 연기가 가득 찼고, 여기저기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승무원은 “코와 입을 막고 몸을 낮추세요”, “괜찮아. 침착해 주세요”라고 고함치듯 말했다.
그때 승객들도 절규하듯 고함을 질렀다. “빨리 나가게 해 주세요”, “문을 열면 되잖아요”…. “뭐하는 거야”라며 화를 내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승객들은 기본적으로 승무원의 지시에 따랐다. 실제로 입과 코를 막고 몸을 숙였다. 간혹 일어서서 바깥 동정을 살피는 사람도 보였지만 극소수였다. 그 덕분에 생사 갈림길에서 생(生)으로 가는 길인 ‘통로’가 뚫려 있었다. 먼저 살겠다고 일어나 통로로 몰렸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충돌 후 8분이 지난 시점에 승객들의 탈출이 시작했다.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오는 승객을 살펴봤더니 대부분 빈손이었다. 가방을 든 사람은 1명이었다. “(선반에서) 짐을 내리지 말아 달라”라는 승무원의 지시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너도나도 짐을 챙기다간 역시 통로가 막혔거나 슬라이드를 내려올 때 방해가 돼 탈출이 지연된다. 여객기가 전소하는 대형 사고 속에서 탑승자 379명 전원이 무사했던 기적은 승객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비자들 역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부정확한 사실 혹은 악의적 잣대로 기업을 공격하는 내용을 인터넷 댓글로 달면 기업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 35조3480억 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대로 소비자가 기업의 선한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다. 2020년 11월 전남 영광 중앙초등학교 6학년 2반 학생들은 우유 제품에 붙어 있던 200개 빨대를 뜯어내 손 편지 29통과 함께 매일유업으로 보냈다. 편지 내용은 ‘빨대가 바다 생물들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매일유업은 곧바로 자사 우유 제품 포장지에 붙인 빨대를 퇴출시켰다.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이고 있다. 지난해 말 컵커피 제품의 플라스틱 뚜껑과 빨대도 없앴다. 초등학생들의 행동은 기업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게끔 만드는 마법의 단초가 된 셈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