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으로 출산율이 반등한 일본 기업의 사례가 저출산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 이토추상사 여성 직원 1명당 출산율은 2021년 1.97명이다. 2012년만 해도 이토추상사 출산율은 0.60명으로 일본 평균 합계출산율(1.41명)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9년 새 출산율이 3배로 올라 거의 2명을 낳는 셈이니 ‘이토추의 기적’으로 불릴 만하다.
이토추상사는 2013년부터 오전 5∼8시에 출근해 오후 3시부터 퇴근하는 ‘아침형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해외 무역을 하는 종합상사 특성상 야근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도 원칙적으로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금지했다. 그 대신 수당을 지급하며 새벽 근무를 장려했다. 주 2회 재택근무제도 실시한다. 아이를 키우는 직원이라면 오전 5시에 출근했다가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과감하게 일하는 방식을 바꿔 아이를 낳고 부모가 직접 키울 수 있는 근무 환경을 조성하자 출산율이 저절로 올라간 것이다.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제는 사실 노동생산성을 높여 기업 경쟁력을 키우려는 경영적 판단에 따라 도입됐다. 일하는 방식을 바꾼 이후 직원 1명당 순이익이 5.2배 늘었고, 주가는 7.8배 뛰었다. 일본 정부는 생산성과 출산율을 동시에 올리는 데 성공한 ‘이토추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호응한 기업들도 유연근무제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이토추상사도 초기에는 육아기 단축 근무와 같은 기혼 여직원만 배려하는 조치를 시행했다가 장시간 근무 문화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제를 실시했다. 일단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자 생산성과 출산율이 함께 올랐다. 야간 근무 수당이 새벽 근무 수당으로 대체됐을 뿐 큰 비용이 들지도 않았다.
‘이토추 모델’은 아이 수에 따라 매겨지는 현금성 지원, 기혼 여성에게만 집중된 저출산 대책, 각 부처의 예산 확보를 위한 백화점식 정책으로는 출산율 반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6년부터 300조 원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도 출산율 ‘0.78 쇼크’에 직면한 한국이 저출산 해법으로 면밀히 연구해야 할 사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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