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주변을 지날 때면 23년 전 취재 기억이 떠오른다. 2001년 3월 4일 새벽 서울엔 간간이 눈발이 날렸다. 강풍과 영하의 날씨에 큰불이 여러 곳에서 났다. 강남구 세곡동 비닐하우스에선 잠을 자던 일가족 10명이 화재로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그날 새벽 홍제동에서는 방화로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러 들어간 서부소방서 소속 6명의 소방관(김기석 김철홍 박동규 박상옥 박준우 장석찬)이 무너져 내린 낡은 건물 내부에서 순직했다. 단일 화재로 가장 많은 소방관이 순직한 사고였다.
이날 오후 9시 취재 지시를 받고 박동규 소방장과 김기석 소방교의 시신이 안치된 세란병원으로 달려갔다. 장례식장에서 “고인에 대한 예의”라며 기자에게 술잔을 권하던 한 젊은 소방관은 “눈앞에서 동료들이 죽어가는데도 어쩌지 못했다. 죽어야만 (소방관에게) 관심을 갖는 세태가 무섭다”고 서러워했다.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란 고인은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고 대학을 다니며 야학 활동을 했던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날 동료를 잃은 소방관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슬픔을 밤새 토해냈다.
시간이 흘러도 살아남은 소방관과 유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대형 화재가 나면 부상 소방관 지원이나 순직 소방관 예우가 거론되지만 그때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잊힌다. 홍제동 소방영웅 6명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도 최근 일이다. 서대문구가 그들이 순직한 홍제동 통일로 주변 길을 ‘소방영웅의 길’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며서 잊힌 이름을 23년 만에 다시 듣게 됐다.
한국은 제복 입은 영웅들의 희생을 기리는 데 인색하지만, 미국 도시에는 시민을 위해 순직한 영웅의 이름을 딴 도로, 다리, 공공건물이 많다. 뉴욕에선 2001년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에서 숨진 소방관 343명을 기리기 위해 소방관들이 뛰어 올라갔던 110층 계단을 따라 오르는 계단오르기 행사가 지금도 매년 열린다. 순직 소방관의 영결식은 지역 방송사가 생중계한다. 미국 사회에서 시민을 지키는 제복 입은 영웅은 존중과 예우의 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양성된다.
영웅을 오래 기억하는 사회에선 재난 전쟁의 현장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 정신이 살아 숨쉰다. 2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해상보안청 수송기와 충돌해 불이 붙은 여객기에서 18분 만에 379명이 모두 무사히 탈출했다. 이날 모든 승객과 승무원을 내보내고 마지막으로 기내를 빠져나온 이가 기장이었다.
대형 화재 현장을 본 사람들은 넘실거리는 화염과 열기, 뭔가 펑펑 터지는 큰 소리에 압도되고 만다. 23년 전 홍제동의 소방관들도 그랬을 텐데 “아들이 집에 남아 있다”는 집주인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화마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리고 동료와 유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졌는데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데만 23년을 허비했다.
다른 한편에선 공직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장관이 취임 석 달 만에 총선 출마를 위해 물러나는 ‘속도 경쟁’이 벌어진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진 검사가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한다’는 검사 선서의 다짐이 무색하게 사표 한 장 던져 넣고 정치판으로 직행한다. 천금처럼 무거운 공직의 무게를 깃털보다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여태 법을 만들고 지키는 최고의 자리에 앉아 권력을 누리니 정작 시민 곁에서 마지막까지 소명을 다한 제복 입은 영웅들은 홀대를 받는다. ‘소방영웅의 길’ 위에서 우리가 다짐할 차례다. 한 사회를 지키는 제복 입은 영웅은 우연히 등장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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