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2%인 국방예산을 2.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냉전 한복판이던 1960년대(5∼7%) 수준은 아니지만 21세기 최고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의지다. 그랜트 섑스 국방장관은 어제 이런 구상을 밝히면서 “평화 배당금을 누리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평화 배당금이란 국방비를 삭감해 생긴 여유 예산을 투자 배당금을 받아 생긴 목돈처럼 보는 표현이다. 냉전 후 각국은 복지와 교육 등에 더 썼다.
▷섑스 국방장관은 현 시점을 “전후(post-war) 시기를 벗어나 (전쟁을 앞둔) 전전(戰前·pre-war) 시기에 접어드는 새 시대의 여명”이라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에서 2개의 전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지만 ‘진짜 전쟁’은 따로 올 듯이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5년 내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에서 분쟁 현장을 보게 될 것”이라며 4개국을 거론했다. 미국과 동맹이고, 북한과 대적하고, 중국과 협력해야 하는 우리로선 엄중한 상황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영국이 국방비 증액에 나선 이유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한 축인 서유럽이 평화 배당금에 취해 국방 태세를 놓아버렸기 때문이란 판단에서다. 나토는 국방예산의 70%를 미국에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다. 독일 슈피겔지는 자국 주력 전투기인 128대 가운데 4대만이 비상시 실전 투입이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독일의 비축 탄약이 이틀 분량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영국이 보유한 장거리포는 12문에 불과하다. 우리 흑표 K-2 전차가 방산 경쟁 때 명성 높던 독일 레오파드 전차를 번번이 이긴 것도 이래서 가능했다.
▷트럼프의 미국 중심주의도 유럽을 긴장하게 한다. 그가 11월 재선될 경우 나토 탈퇴를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 회원국 한 곳이 공격받으면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조약 5조가 나토의 핵심이다. 트럼프는 2017년 나토 정상회의 때 모든 미 대통령이 반복 다짐했던 ‘조약 5조의 중요성’을 일부러 빼고 말했다.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비용 추가 부담을 요구한 것 이상으로 유럽 부자 나라들에 방위비 증액을 압박했던 것이다.
▷탈냉전 평화를 벗어나 새로운 전쟁 시대의 전야(前夜)가 된 지금 미국과 영국이 보는 적대세력에 러시아 외에 중국 이란 북한이 추가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섑스 국방장관은 연설에서 “냉전 때는 상대가 이성적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불안정하고 비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향후 30년 안보 위협의 성격을 보여주는 말이다. 미영의 전략 구상이지만, 한미동맹을 통해 연결된 우리 처지도 다를 게 없다. 1981년 GDP 대비 6.4%였던 우리 국방예산은 김영삼 정부 이후 2%대를 유지하고 있다. 2022년은 2.7%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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