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커피농장의 지프차, 6·25 상흔을 싣고…[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8일 23시 30분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콜롬비아를 방문할 때면 대부분 시간을 아버지의 커피농장에서 보낸다. 보고타에 사시던 아버지는 20여 년 전 어머니와 헤어진 후로 그곳에서 혼자 살고 계신다. 해발 1200∼1500m 산 중턱에 있는 이곳은 1월에도 기온이 섭씨 25도까지 올라가며 1년 내내 한국 5월의 날씨와 비슷한 기후다. 한마디로 천국 같은 곳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나는 콜롬비아로 돌아와서 지난 몇 주 동안 아버지와 함께 이 농장에서 지내고 있다. 아버지와 떨어져 산 지는 벌써 수십 년이 지났기 때문에 다시 한 지붕 아래에서 나날을 보내기로 한 건 둘 다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묵기로 한 데엔 다른 이유가 있다. 아침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새들이 재스민 나무를 찾아오는 농장의 고요 속에서 여덟 번째 책을 쓰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보관해 둔 망원경을 쓰고 이 새들을 관찰했는데 믿기 힘들 정도로 신기하고 화려한 모습이었다.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는 대신 생긴 취미다. 산꼭대기에 있는 아버지의 집 부근은 인터넷 연결이 거의 되지 않기 때문인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의 소설은 한 줄도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나 같은 도시인의 눈에는 이곳이 너무도 외딴곳처럼 느껴지지만, 아버지는 이곳에서 가장 행복해 보인다. 아버지는 지난 20년 동안, 몇 차례 해외에서 상을 받기도 한 커피를 재배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오전이 되면 습지에 적합한 고무 부츠를 신고 땀에 젖은 이마에 머리카락을 붙인 채로 몇 시간 동안 커피를 수확한 후, 오후에 거두어들인 커피의 무게를 재고 수첩에 숫자를 꼼꼼히 적어 내려간다. 매년 차를 바꾸고 맞춤 정장에 수입 구두와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의 동료들을 현혹하던 도시 속 아버지의 과거가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

한편, 농장에서 가장 가까운 읍내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30분 정도를 달려야 나온다. 아버지는 자신의 픽업트럭에 나를 태우고 읍내에 갈 때마다 부근 다른 농장에서 있었던 일이나 소문을 상세하게 들려준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이야기들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오토바이와 트랙터가 충돌한 곳, 농장에서 일하던 농부가 미끄러져 목이 부러진 곳, 아내와의 문제로 목을 매 숨진 노인, 어린 소녀가 쥐약으로 자살한 집. 그 소녀는 임신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 두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국의 노인 빈곤이나 청소년 자살과 같은 문제가 떠올랐다. 이 동네에선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작물을 위해 일을 하면 적어도 굶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곳 시골의 노인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960년대에는 한국이 콜롬비아보다 더 가난한 나라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수치로 보자면 아마 사실일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에도 대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산간벽지나 섬 지역에는 내가 있는 이 농장 지역에서 사는 콜롬비아 농민만큼 가난한 한국인도 여전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제는 내 삶의 일부인 두 나라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실타래는 사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버지의 차 없이 읍내에 가려면 지프차를 타야 한다. 농장 대문을 나서서 오솔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다 나오는 갈림길에서 기다리다 보면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지나간다. 나처럼 차가 없는 산속의 농민들이 시장에 가거나 의사에게 가거나 아니면 술집에서 맥주라도 한잔하기 위해 읍내를 찾을 때 사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이 차는 대개 빨간색이나 녹색의 무척 낡고 작은 지프차로 운전자를 포함해 총 8명이 탈 수 있지만 보통 12명까지 실어 나른다. 지프 뒤편은 컨버터블 지붕이 있어 마지막에 탑승한 사람은 발을 뒤에 걸친 채 차에 매달려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커피, 파인애플, 카사바, 바나나 등이 심어진 산의 언덕과 비탈을 가로지른다. 이 지프차들은 사람만 싣는 게 아니다. 승객들은 보통 여행 가방이나 농업 도구, 농산물이 든 자루를 들고 타기 때문에 과적하는 지프는 일상이지만 무리 없이 튼튼하게 산의 끝과 끝을 오간다. 우리 아버지 같은 농장주들도 우기에는 자신의 차 대신 이 지프차에 그간 수확한 커피를 실어서 읍내로 간다. 그렇게 읍내에 도착한 커피는 한국의 농협에 해당하는 ‘커피 재배자 연합’ 사무소를 통해서 세계 최대 커피 소비국인 한국이나 스칸디나비아 국가로 흘러가게 된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었던 두 나라의 연결고리는 이게 아니다. 튼튼하지만 위태롭게 휘청거리며 커피를 실어 나르는 이 지프차가 사실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차량이었다는 사실이다. 50년대 한국의 산등성이를 오르내렸을 법한 이 차들이 어떻게 콜롬비아의 커피 산맥으로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른다. 하지만 콜롬비아 출신의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이 지프차에 타게 된다면 어떤 풍경이 머릿속에 떠오를지 나는 조금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이 커피 농부들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내 아버지가 나에게 가끔 들려주시는, 슬프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들처럼 말이다.
#콜롬비아#커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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