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등교 뒤 출근하는 佛부모들[특파원칼럼/조은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9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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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출퇴근과 휴가, 육아 부담 덜어줘
육아수당보다 근무 유연화가 본질적 해법

조은아 파리 특파원
조은아 파리 특파원
매일 아침 둘째 아이를 프랑스 파리의 한 유치원에 보낸다. 한국이라면 출근을 마쳤을 시간인 오전 8시 반마다 유치원 입구로 우르르 몰려드는 부모들 풍경이 이색적이다. 양복, 하이힐에 노트북 가방을 메고 아이를 유치원에 들여보낸 뒤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부모들이 많다. 서울에서 주변에 일하는 부모들은 주로 ‘이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아이를 맡기고 정신없이 집을 뛰쳐나오기 바빴기에 궁금했다. 부모들은 유치원에 들렀다가 출근해도 늦지 않나. 프랑스 기업의 출근 시간이 유독 늦는 것일까.

얼마 전 워킹맘인 아이 친구 엄마가 답을 알려줬다. 그 엄마는 주간 근무 전체 시간을 채우고 중요한 미팅만 차질 없이 소화하면 원할 때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집 부부가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아이를 셋이나 키울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이런 근무 환경은 보편화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2년 10월 진행된 한 설문에서 ‘시간과 장소 모든 측면에서 업무 환경이 유연하다’고 밝힌 응답자는 40%였다. 둘 중 하나만 유연하다고 답한 비율까지 합하면 절반이 넘는다.

프랑스 기업들은 출퇴근 시간뿐 아니라 휴가 제도도 유연하다. 최근 취재를 위해 만난 글로벌 광고기업 퓌블리시스 프랑스법인의 한 임원은 ‘직원들이 출근을 원할 때 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아이가 아플 땐 언제든 연 10일의 유급 휴가를 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 회사처럼 육아로 돌발 변수가 생길 때 긴급 휴가를 낼 수 있는 기업들이 많다.

일하는 부모들은 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절실한 것은 ‘돈’보다 ‘시간’임을. 일하는 엄마들에게 경력 단절의 순간은 아이가 필요로 하는데 당장 달려갈 수 없을 때 찾아온다. 부모들의 이런 깊은 고충을 프랑스 기업들은 잘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는 셈이다. 유연한 근무 환경은 프랑스의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프랑스는 합계출산율 1.8명으로 10년 연속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1위다. 프랑스 출산율은 한국(0.78명)의 2.3배에 이르지만, 최근 다시 하락한다는 위기감에 정부가 부부 모두 산후 출산휴가를 6개월로 늘리겠다는 파격적인 정책까지 발표했다. 부모의 육아 시간을 추가로 벌어주려는 취지다.

탄력적인 근무제도는 업무 효율도 높인다. 프랑스에선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한 기업이 늘고 있는데 그 효과가 좋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최근 한 에너지 기업이 법정 근로 시간인 주 35시간을 주 4일에 나눠 근무하는 실험을 6개월간 진행한 결과 작업 속도가 높아졌다고 소개했다. 일평균 회의 시간은 63분에서 54분으로 단축되고, 직원 120명의 결근율은 70% 이상, 사직 건수는 절반 이상 줄었다.

8년 연속 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인 한국도 갖가지 저출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여야가 대표 대책으로 앞세운 주택비용 절감 대책이나 각종 육아 수당도 육아 부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본질적인 해법은 아니다. 특히 인천시가 아동에게 18세까지 1억 원 이상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각종 수당을 경쟁적으로 내놓는데 이런 현금성 지원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런 수당은 아이 학원을 한 곳 정도 늘릴 수 있을 뿐이지 본질적인 변화를 주진 않는다.

일하는 부모가 일과 육아를 안정적으로 병행할 수 있도록 탄력적인 출퇴근제와 재택근무만 활성화해도 부모들의 육아는 한층 가벼워진다. 물론 정부와 기업도 이 점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근무 형태를 유연화하면 직원을 제대로 감독할 수 없고 성과가 떨어질 것이란 통념 탓에 현실적으로 확산하질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비슷한 저출산 대책만 재탕하고 있다면, 지금까지 그랬듯 ‘출산율 꼴찌’를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출퇴근#근무 유연화#근무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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