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교권침해 논란이 극심했던 가운데서도 학생들은 ‘교사’를 가장 믿는 직업군으로 꼽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중고교생 1만1000여 명을 설문한 결과 ‘교사를 신뢰한다’는 아이들이 86.8%로 종교인(34.0%), 판사(55.6%), 검찰·경찰(61.7%) 등 다른 직업군을 한참 앞섰다. 성인이 네 명 중 한 명만 교사들의 능력과 자질을 신뢰하는 것과 대조된다.
최근 교권침해 논란에서 많은 국민은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제 자식만 소중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잇따른 탓에 지난해 12월 아동학대처벌법에 ‘교원의 정당한 교육 활동과 학생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법제화까지 한 실정이다. 학생이 다른 학생이 보는 가운데 교실에서 교사를 폭행하고, 부모가 자녀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번 설문조사에서 학생 열 명 중 아홉 명은 ‘우리 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중한다’고 답했다. 대다수 아이들의 마음속엔 선생님이 여전히 믿을 수 있고 존경하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믿음이 살아있을 때 학부모와 교사가 변해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 학생들 절반 가까이는 ‘우리 사회가 학교 성적에 따라 사람을 차별한다’고 답했다. 성공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답한 학생은 지난해보다 줄었고, ‘돈을 잘 버는 것’이라는 학생은 늘었다. 학부모가 학교에 명문대 진학만을 요구하고, 교사가 다양한 가능성을 무시한 채 공부에 뒤처진 학생을 낙오자로 대하는 한 교실의 변화는 요원하다.
이번 조사에서 학생들의 신뢰가 가장 낮은 직업군은 정치인(23.4%)과 대통령(22.7%)이었다.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는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31.5%)보다 낮았다. ‘우리나라 정치가 사회 문제를 해결할 때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는지’에 대해 ‘그렇다’고 답한 학생은 열 명 중 한 명뿐이었다. ‘우리 사회를 믿을 수 있다’는 학생도 열 명 중 세 명에 불과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고교로 갈수록 불신이 깊었다. 미래 세대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이토록 낮은 현실을 엄중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