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둔화 속에 치열해지는 가격 경쟁. 그리고 혹한 속 충전 문제까지. 연이은 악재에 전기차 회의론이 번지고 있다.
문제의 출발점은 폭발적이던 판매 성장세의 둔화다. 지난해 30% 이상 증가한 순수전기차(B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의 판매량은 올해 20%가량 느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이 느려지면서 전기차 기업 사이에선 자연스레 가격 경쟁이 벌어졌다. 전기차 판매량 1, 2위 기업인 테슬라와 중국 비야디(BYD)가 잇따라 할인 판매에 나서면서 ‘치킨 게임’ 우려까지 불거졌다.
얼마 전 미국에서 영하 30도∼영하 20도의 강추위 때문에 벌어진 충전 대란 소식도 가세했다. 날이 추워지면 충전이 어려워지고 배터리 효율도 급격히 떨어지는 전기차의 한계가 부각됐다. 실제로 국내에서 환경부 인증을 받은 승용차 42종을 분석한 결과 영상 25도 상온과 영하 6.7도 저온의 주행거리 차이가 평균 82.1km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회의론이 이미 시작된 전기차 대중화의 흐름을 되돌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가파른 성장세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올해 BEV·PHEV 예상 판매량은 1700만 대가 넘는다. 글로벌 차 시장은 연 9000만 대 수준. 전기차는 객관적인 수치에서 명실상부한 ‘주류 파워트레인’ 중 하나로 올라섰다. 성장 속도가 더뎌졌을 뿐 전기차 판매량은 내년 이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격 경쟁도 소비자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배터리 때문에 내연기관차보다 명백하게 비쌌던 전기차의 가격이 내려가는 확실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정부 보조금에 기대기 힘들어지는 상황. 전기차 기업은 가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지상 과제다. 이를 위해 전기차 기업은 배터리 기업을, 배터리 기업은 배터리 소재 기업을 압박하려는 참이다.
혹한 앞에서 약해지는 전기차의 기술적 한계는 어떨까. 사실 이 대목에는, 지역과 용도에 따라 분화될 전기차 시장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힌트가 숨어 있다.
체감 기온이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간 혹한의 아침에 많은 테슬라 운전자가 충전소로 몰려들었다는 에피소드. 이는 결국 가정용 충전기까지 포함하는 ‘확실한’ 충전 인프라가 전기차 확산에 가장 중요하다는 단순한 진실을 잘 보여준다.
한대성 기후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에서는 전기차가 지난해 전체 신차 등록대수의 82.4%(10만4500여 대)를 차지했다. 신규 내연기관차 등록을 내년부터 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가정용, 공공용 충전기를 적극 확충한 결과다.
도로가 좁은 유럽에서는 작은 차가, 교외 단독주택 생활자가 많은 미국에서는 픽업트럭이 유독 잘 팔린다. 이처럼 전기차도 전력 인프라가 우수한 선진국에서 장거리 여행용보다 도심 주행용이나 세컨드 카로 각광받게 될 수 있다. ‘얼리 어답터’의 전유물을 넘어 대중화 중인 전기차는 이제 그 특징에 걸맞은 시장에서 꽃피우는 미래를 향해 굴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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