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연세대 농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최희암 전 감독(69)은 운동선수 출신으로는 드물게 기업인으로도 성공했다. 50대 중반이던 2009년 고려용접봉에 입사한 최 전 감독은 그해 중국 지사장을 시작으로 부사장과 사장을 거쳐 현재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몇 해 전까지 생산과 판매, 관리 등을 모두 총괄하다가 최근엔 대외업무와 영업, 신사업 개발 등을 맡고 있다.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던 탓에 그는 시험을 보고 연세대에 입학했다. 기업인이 된 후엔 당시의 공부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실업농구 현대의 창단 멤버였던 그는 조기 은퇴 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수입-통관 업무를 봤고, 현대건설로 옮겨서는 구매 업무를 맡았다. 현대건설에 다닐 땐 이라크 바그다드 공사 현장에 1년간 파견도 나갔다. 그는 “어릴 때 직장 생활을 해본 덕에 기업에 와서도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학 감독으로는 ‘코트의 마법사’란 별명을 얻었지만 프로 감독으로는 성공과 거리가 멀었다. 현대모비스와 전자랜드 감독을 맡았지만 상위권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교만했던 마음을 이유로 들었다. 최 부회장은 “과거의 성공에 취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또 프로농구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 활용에 대해서도 올바른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프로 감독으로의 실패는 ‘기업인’ 최희암에게는 훌륭한 공부가 됐다. 최 부회장은 기업인으로 변신한 이후 겸손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는 “주위의 모든 분이 내게는 스승이고 선생님이었다. 낮은 자세로 차근차근 배우다 보니 시행착오가 점점 줄었다”고 했다.
농구 감독과 기업인 중 무엇이 더 어려웠을까. 그는 “세상에 쉬운 건 하나도 없더라”고 했다. 그는 “농구는 경기 전후 스트레스가 많지만 어쨌든 승패라는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기업은 일 년 내내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며 “농구는 한 시즌을 망쳐도 다음 시즌이 있지만 기업은 한번 망하면 다음이라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사는 그는 걷기로 건강을 챙긴다. 그에게 골프장은 공을 치는 곳이라기보다는 걷는 곳이다. 그는 “건강을 위해 하루에 8000보는 걷자고 마음을 먹는데 생각보다 실천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골프장에 가면 1만2000보를 걷는다”고 했다. 80대 중반∼90대 초반 스코어를 치는 그는 “골프장에서는 내가 인기가 참 많다. 오히려 잘 못 치니까 동반자들이 즐거워하고 더 좋아해 주신다”며 웃었다.
선수와 감독 시절엔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던 그도 요즘엔 종종 술자리를 갖는다. 하지만 회식 이후엔 가능한 한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목적지보다 한두 정거장 먼저 내려 최대한 많이 걸으려 한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는 기업가로서도 은퇴한 뒤엔 한국 곳곳에서 ‘1년 살이’를 해보는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사업상 이곳저곳을 많이 다니다 보니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이 너무 많더라. 동해에서 1년, 서해에서 1년, 제주에서 1년씩 살며 그 지역의 모든 것을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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