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조카의 중학교 졸업식에 갔다가 졸업식 노래로 공일오비의 ‘이젠 안녕’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졸업식 노래라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졸업식 노래’만 기억하는 나에겐 살짝 충격이었다. 해방된 이듬해 ‘졸업식 노래’로 공식 제정된 노래는 점차 시대에 맞지 않는 가사와 졸업식에 재학생이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 불리지 않게 됐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게 공일오비의 ‘이젠 안녕’이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여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라는 가사보단 “우리 처음 만났던 어색했던 그 표정 속에”로 시작해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란 후렴구로 이어지는 노래가 첫 만남과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현장엔 더 잘 어울렸다. 다만 ‘관’의 주도로 만들어진 노래가 아닌 이런 대중음악이 졸업식 행사장에서 불린다는 사실이 신선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대중음악 가운데 ‘졸업’을 소재로 만든 노래는 꽤 많다. 공일오비의 ‘이젠 안녕’은 졸업이 아닌 밴드의 해체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지만 ‘헤어짐’의 대명사 같은 노래가 됐다. 전람회의 ‘졸업’도 졸업 시즌이 되면 라디오에서 많이 나오는 노래다. 이지연의 ‘졸업’은 좀 더 특별한 노래였다. 데뷔 당시 ‘고교생 가수’로 유명했던 이지연은 고3 담임교사,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녹음해 화제를 모았다.
그런 ‘졸업의 노래’ 가운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아 있는 건 해바라기가 부른 ‘그날 이후’다. 1970년대 김영미, 이정선, 이주호, 한영애 4인조로 시작한 해바라기는 1980년대 이주호가 유익종과 함께 지금 우리가 아는 듀엣 해바라기로 재편했다. 이광준과 새롭게 호흡을 맞춘 2집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거의 모든 노래가 인기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의 시’, ‘행복을 주는 사람’, ‘어서 말을 해’ 등이 연이어 히트했다.
‘그날 이후’는 그 인기곡 사이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인기는 상대적으로 덜했고 공연에서 불리는 경우도 적었다. 하지만 노래의 메시지가 갖고 있는 힘은 은근하게 강해서 발표된 지 40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노래를 찾고 감상에 젖는 사람들이 있다. 이주호가 써 내려간 노랫말에 이별의 아쉬움과 새로운 출발에 대한 희망이 더없이 서정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의 부제는 ‘졸업’이었다.
“잘 가오 친구여 그대 떠난 후라도/우리의 마음엔 그대 모습 남으리”나 “친구여 그대 가는 곳 사랑 있어 좋으니/마음에 한가득 사랑 담아 가소서” 같은 구절이 예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이별을 앞둔 친구끼리 공유할 수 있는 사랑과 우정의 마음인 건 변함이 없다. ‘졸업’이란 행위가 그렇게 썩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출발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클 수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그대 가는 곳 사랑 있어 좋”을 것이라 위로해 주는 이 노래야말로 지금 시대에 어울린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들이 많은 요즘이다. 그들 가는 곳에 사랑이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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