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단독 처리한 이 법안은 원인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를 설치해 고강도로 조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유가족 반발을 고려해 영구적인 추모 공간을 만들고, 유가족 재정 지원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취임 후 21개월이 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9건으로 늘어났다. 직역 간 갈등이 큰 간호법, 재정이 크게 필요한 양곡관리법, 배우자가 직접 관련된 김건희 특별법 등이다. 이승만(45차례)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1987년 체제 이후 노태우(7) 노무현(6) 박근혜(2) 이명박(1) 전 대통령과 비교할 때 가장 많다. 여소야대 구도에서 일그러진 정치와 국정의 상징으로 기억하게 됐다.
특별법에 대한 여야의 인식 차는 간극을 좁히기 어려울 정도다. 여당은 대통령에게 거부권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의도라고 말한다. “더 규명할 진상이 없고, 특조위 구성도 야당이 좌지우지한다”는 말에 집약돼 있다. 민주당은 “159명이 숨졌는데도 경찰의 부실 수사로 진실 규명에 실패했고, 찬바람 맞고 있는 유족들 마음에 못을 박았다”고 비판했다.
여야는 설명할 의무가 있다. ‘또 다른 갈등’이라며 넘어갈 일이 아니다. 서울경찰청장 등 23명이 기소됐지만 포괄적 책임을 진 정부 고위직 인사는 없었다. 정부 차원에서 참사의 원인과 과정을 속시원하게 정식 설명한 적도 없다. 야당 역시 총선 후로 특조위 구성을 미루는 등 ‘정쟁 요소’를 막판에 뺐다지만 설명이 더 필요하다. 세월호 사건 등 참사 때 위원회를 반복 구성했지만 소득이 별로 없었던 이유를 성찰해야 한다. 특조위원 수에서 7 대 4 비율로 야당 우위를 적시한 법안을 두고 “일방적이지 않다”는 말만으론 부족하다.
그럼에도 핵심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한 책임 있는 국가 행정은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는가. 재발 방지책들이 온전히 작동하고 있나. 유가족 고통은 어루만져지고 있는가. 정부와 국회가 이런 책무를 명심하고 있다면 진지한 협의를 통한 해법 마련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이후에도 정치 싸움에만 머문다면 망자와 유가족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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