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뜩잖은 관직[이준식의 한시 한 수]〈249〉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일 23시 18분


하서위(河西尉)를 맡지 않은 건, 처량하게 허리를 굽혀야 하기 때문이었지.
늙은이라 분주히 오가는 게 걱정스러웠는데, 율부(率府)의 일은 그런대로 한가롭지.
술 즐기려면 적은 녹봉이나마 꼭 있어야 하고, 거리낌없이 노래하려면 이 조정에 기댈 수밖에.
고향으로 돌아갈 꿈 사그라진 지금, 고개 돌려 광풍을 마주하네.

(不作河西尉, 凄凉爲折腰. 老夫怕趨走, 率府且逍遙. 耽酒須微祿, 狂歌托聖朝. 故山歸興盡, 回首向風飇.)

―‘관직을 정한 후 재미 삼아 보내다(관정후희증·官定後戱贈)’두보(杜甫·712∼770)





관직을 향한 두보의 집념은 절박했다. 두 차례 과거에 실패한 후 현종에게 자신의 재능을 어필하는 문장을 세 차례나 올렸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세도가나 그 측근에게 자신을 천거하는 시를 줄기차게 보냈다. 자기 재능을 과시함과 동시에 상대를 치켜세우는 칭송 위주로 내용을 채우려다 보니 한량없이 긴 장시가 되기 일쑤였다. 무수히 올린 자천(自薦)의 시가 주효했던지 마침내 좌상 위견소(韋見素)가 그를 하서 현위(縣尉)로 천거했다.

하나 시인은 이를 거절하고 대신 율부의 주조참군(冑曹参军) 자리를 받아들였다. 왜 그랬을까. 현위는 상관 접대하느라 굽신거려야 하고 늙은 몸으로 일선에서 바삐 움직여야 하는 데 비해 주조참군은 무기고나 관아 출입문을 관리하는, ‘그런대로 한가로운’ 직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넷. 늙음을 내세운 건 아무래도 억지 구실인 듯하다. 백면서생의 물정 모르는 트집 같기도 하고, 요직을 얻을까 하는 높은 기대치에 대한 실망감인 듯도 싶다. 시제에 ‘재미 삼아 보내다’라고 한 건 바로 이런 복합적인 심사를 자조적으로 내뱉은 반어가 아닌가 싶다. 이런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자학이라도 하듯 시인은 지금 광풍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

#관직#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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