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에 끊임없이 맞서는 주인공 거츠와 욕망에 굴복해 각자의 소중한 사람을 제물로 바쳐 버린 사도들의 사투를 그린 ‘베르세르크’는 철학적인 이야기에 더해진 뛰어난 작화로 많은 만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는 희대의 명작이다. 30년이 넘는 긴 기간 연재된 이 작품은 주인공과 사도를 포함해 기구한 사연을 가진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스토리가 전개된다. 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플롯은 의외로 간단하다. 핵심은 ‘주어진 시련을 극복할 것인가, 이에 굴복할 것인가’다.
작중 견디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디라도 좋으니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데려가 달라고 외치는 소녀에게 주인공은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고 도착한 그곳 역시 전장이라고 말한다.
소녀의 바람을 거절한다기보다 소녀가 스스로 자신의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려는 의도이자 그녀만의 전장에서 싸워 나가라는 역설이다. 어쩌면 따르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믿었던 전우에게 배신당하며 그 누구보다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의 말이기도 하다. 베르세르크의 세계관을 가장 절실하게 담아낸 대사다.
누구나 살아가며 원치 않는 상황을 맞닥뜨리고 때론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도망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도망이 자포자기의 도망이 돼선 안 된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고 어디로 도망친다 한들 그곳 역시 또 다른 전장일 뿐이다. 중요한 건 무조건적인 회피가 아닌 극복하려는 의지와 실천하는 용기다. 간절함에서 나온 작은 발버둥이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난관을 넘어서는 시작점이 된다.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이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키기도 한다. 미우라 겐타로 작가 역시 더 좋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본인을 채찍질한 심경을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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