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상 고소와 고발은 명확히 구분된다. 고소는 범죄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 법정대리인 등 ‘고소권자’가 수사기관에 범죄 사실을 알리고 범인의 처벌을 요구하는 의사표시다. 고발은 고소권자가 아닌 제3자가 범죄를 신고하고, 범인의 처벌을 요구하는 행위다. 범인의 처벌을 적극 요구한다는 점에서 112 같은 단순 신고와는 구분된다.
범죄자를 구속하거나 재판에 넘길 수 있는 검찰엔 매일 수백 개의 고발장이 접수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5만3846건의 고발장이 접수됐고, 7만3470명이 고발을 당했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 평균 147건이 접수되며 201명이 고발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고발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논란이 큰 사건은 시민단체가 나서 수사기관에 고발장을 내기도 한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이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헬기 이송 특혜 의혹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면 더 그렇다. 검찰이 수사해서 기소하면 고발당한 진영이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는 이런 ‘고발 활동’에 적극적이다. 실제 두 사건 모두 시민단체와 유튜버 채널 등이 고발장을 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고발이라는 사법적 행위의 이 같은 성격을 감안한다면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고발 사주’ 의혹은 형사사법체계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다. 고발을 받아야 하는 검찰이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이라서다. 고발장에 적시된 피해자가 당시 검찰총장인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고, 피고발인은 최강욱 전 의원과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당시 여권 정치인이었기에 특히 더 그렇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검찰이 검찰권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기소된 손준성 검사장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하면서 “고발장의 작성, 검토를 비롯해 고발장 내용의 바탕이 된 수사 정보의 생성·수집에 관여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거나 시도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해 ‘검찰권을 남용’하는 과정에 수반된 것이란 측면에서 사안이 엄중하고 죄책 또한 무겁다”고 꾸짖었다. 사실상 고발 사주 의혹의 실체를 인정하고 선거 개입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선거 관련 사건이나 부정부패 사건을 수사할 때마다 ‘엄중 수사’와 ‘실체적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 역시 두 원칙으로 대응해야 했지만, 검찰은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손 검사장과 공모한 혐의를 받는 국민의힘 김웅 의원을 불기소처분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 검찰총장 인사말에 적어놓은 ‘국민을 섬기는 검찰’이 무엇인지, 국민 모두가 아는데 검찰만 모르는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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