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여야가 저출산 공약을 발표하는 등 저출산 위기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16년 동안 약 280조 원을 투입했음에도 출산율이 지난해 0.78명까지 떨어진 만큼 그동안 뭘 잘못했는지 리뷰는 꼭 필요하다. 본보 기자들이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일본 헝가리 등을 둘러보고 정책에 참고할 내용을 신년기획 ‘출산율, 다시 1.0대로’ 시리즈로 보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출간된 책과 칼럼 등에선 지금까지의 노력이 성과를 못 냈으니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 출간된 한 책은 저출산 정책 실패의 원인을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에서 찾고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성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산되고 양육의 사회적 가치가 하락했다”고 했다. 또 △여성의 사회 진출을 우대하는 모든 정책을 폐지하고 △중하층 남성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올 초 출간된 다른 책도 “여권 신장이 자녀의 필요성을 낮춰 저출산을 유발한다”며 “(무자녀 가정에 대한) 재산권과 상속권 제한, 독신세, 공직 진출 제한 등 강력한 조치”를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한 연구자는 최근 진보 성향 신문 칼럼에서 “돈을 더 주면 출산율이 올라갈 거라는 ‘헝가리 솔루션’은 국가가 국민을 자극에 반응하는 가축으로 본다는 증거”라며 확실한 해법은 “출산, 인구에 집착 말고 국가가 개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각자의 행복을 응원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신문에는 며칠 후 “차라리 저출생 대책이란 말이 없어지면 좋겠다”며 “서로 존중하는 삶,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게 우선”이란 칼럼도 실렸다.
전자는 최근 일부 보수 진영에서 나오는 주장인데 여성의 사회 진출이 어려워지면 예전처럼 가정에 머물며 아이를 양육할 걸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국민의 자아 실현을 뒷받침하는 게 국가의 책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도 않다.
후자는 일부 진보 진영에서 나오는데 저출산 대책이 여성을 수단화·대상화한다는 거부감에서 비롯된 듯하다. 하지만 ‘청년들의 극단 선택을 막으려면 청년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지 마포대교 난간을 높이거나 순찰을 강화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는 말처럼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정책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또 현금성 지원이 출산율에 영향을 준다는 걸 부정하는 전문가는 없다. 다만 금액이 늘어난다고 효과가 비례하는 건 아니고, 장기적이기보다 단기적 효과란 지적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말하는 저출산 해법은 비슷하다. 출산·육아 부담 경감, 일-가정 양립 지원, 주거 보장, 이민자 유치 등이다. 이는 해외에서 검증된 방법들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안 통한 건 집값 급등 등 다른 변수가 개입된 데다, 심리적 불안을 극복하고 아이를 낳을 정도로 충분히 자원을 배분하지 않아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출산 예산 중 주택 융자 등을 뺀 순수 가족 관련 정부 지출은 한국이 국내총생산(GDP)의 1.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2%)의 3분의 2 정도다.
한 전문가는 “돈을 써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돈을 안 쓰는 게 저출산 해법일 순 없다”며 “더 많이,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공법을 택하되 지원 규모를 늘리고 선택과 집중을 강화해야 한다. 미혼 남녀, 첫째를 안 낳는 부부, 둘째를 안 낳는 부부 등으로 구분한 뒤 우선순위를 정하고 맞춤형 정책을 시행하는 게 그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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