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 합병을 무죄로 선고한 것에 대해 검찰이 판결 내용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적용된 19개 혐의를 전부 무죄로 판단했다. 이 회장을 포함해 14명에 대한 23개 혐의가 모두 무죄였다. 무리한 수사와 기소 끝에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도 검찰은 항소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검찰이 내세운 주요 증거와 법리는 모두 배척됐다. 대표적으로 이 사건의 발단이 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막대한 분량의 파일을 압수했지만 법원은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범죄와 관련 없는 데이터까지 무분별하게 복제가 이뤄지는 등 압수수색 과정이 적법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법원은 증거 취득의 적법성을 엄격하게 따지는 추세다.
또 검찰이 주장한 법리의 핵심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만을 위해 독단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진행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미래전략실이 관여하기 전부터 두 회사가 사업상의 이유로 직접 합병을 추진했고 경영권 승계를 합병의 유일한 목적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법 경영권 승계 목적의 합병’이라는 전제가 무너지면서 이를 위해 회계보고서를 조작하고 허위정보를 유포했다는 등 검찰이 적용한 나머지 혐의들도 줄줄이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이 항소를 강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나중에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피고인에게는 수년간 재판을 계속 받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영미 법계에서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될 경우 검사가 항소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인사청문회 당시 이런 문제점에 공감하면서 “기계적 항소를 지양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이 회장은 이 사건으로 5년 2개월에 걸쳐 수사와 재판을 받았고, 107차례의 공판 중 96차례 직접 출석했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의 글로벌 경영 행보는 크게 제약을 받았다. 특히 신성장동력 확보에 필수적인 대형 M&A는 2016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검찰 재직 당시 수사와 기소를 지휘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심 판결에 대해 “삼성그룹의 사법 리스크를 일단락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검찰이 항소를 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항소에 상고까지 하면 최소 3년 이상 사법 리스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삼성이라는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검찰의 신중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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