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방송된 KBS 대담을 통해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논란과 관련해 사과나 유감의 표시 대신 “아쉽다”는 표현을 2차례 썼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중학교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친분을 앞세워 접근한 재미교포 목사라는 사람을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나”라고 했다. 그런 뒤 검찰에 26년 근무한 자신과 달리 김 여사가 “(내미는 선물을) 물리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이 되고, 좀 아쉬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입장 표명은 명품 백 수수 동영상 공개 70여 일 만에 처음 나온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친인척 감찰을 전담하는 특별감찰관 임명은 국회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했고, 배우자를 보좌하는 제2부속실의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동 사저(私邸)에 머물 때지만 현직 대통령 배우자에게 비밀 촬영 장비를 갖춘 외부 인사가 접근할 수 있었던 경호 실패에 대해선 “검색기를 설치하면 (아파트 지하 사무실 앞) 복도가 막혀 주민들에게 불편을 준다”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은 “분명하고 단호한 처신”을 약속했지만 명시적인 사과를 애써 피한 이번 해명으로 동영상에서 시작된 국민적 의혹과 부정적 여론이 해소될지 의문이다. 이번 사건은 몰래카메라를 들고 접근한 친북 인사와 좌파 유튜버들의 공작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국가 최고지도자의 배우자가 보여준 공인의식 부재는 실망스러웠고, 대북 정책 등 국정에 관여하려는 듯한 발언 역시 대단히 부적절했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1월 말 사건이 처음 불거진 뒤 논란이 점점 커지는데도 ‘몰카 공작’이라는 반박만 내놨을 뿐 김 여사의 처신에 대해선 침묵했다. 이런 사후 대응 방식도 부정적 여론을 키운 측면이 있다. “아쉽다”거나 “대통령 부부가 누군가에게 박절하게 대하는 게 어렵다”는 말 정도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지 않나.
언론 소통 부재 비판에도 방송사 한 곳을 정해 사흘 전 녹화한 90여 분짜리 대담이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문제 외에 물가와 금리, 의료개혁, 저출산, 북핵 등 국정 전반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이 집무실 이곳저곳을 오가며 진행된 탓에 집중적인 질의 응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대통령 부친이 물려준 책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선물, 백악관 노래 등을 통해 대통령의 감성적 면모를 부각하는 영상 편집이 중간중간 등장했다. 왜 녹화 후 사흘 뒤에야 공개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번 대담은 국민이 듣고 싶거나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밝히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만 주로 전달한 셈이 됐다. 또 대통령의 생각과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는 평가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런 방식이 과연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최선의 소통 방법이었는지 의문이다. “언론과의 소통이 국민과의 소통”이라던 윤 대통령이기에 더욱 그렇다.
대통령이 오랜 침묵을 깨고 배우자 문제에 대해 언급을 한 이번 대담은 국민적 우려를 말끔하게 씻을 수 있도록 준비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제 대담 속 어정쩡한 해명으로 명품 백 논란과 배우자의 처신에 대한 의문이 해소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대담은 내용도 형식도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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