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분식집이 있었다. 대학가에서도 오랜 명소 같은 분식집, 덮밥으로 유명했다. 제육, 오징어, 잡채덮밥이 단돈 삼천 원. 손님들은 분식집 주인을 ‘이모’라고 불렀다. “이모, 제육덮밥 하나요.” 그러면 이모님이 대접에 밥을 산처럼 퍼담고는 쏟아질 듯 수북하게 제육볶음을 덮어주었다. 손 큰 이모님은 손맛도 대단했다. 밑반찬도 단무지만 달랑 주는 법이 없었다. 분홍소시지부침, 어묵볶음, 오이무침, 깍두기에 말간 계란국까지 야무지게 챙겨 줬다. 둘이 하나 먹기에도 배불렀다. 중학생 때부터 다니던 단골들이 넥타이를 매고 다시 찾아오는 곳이었다.
나는 포장만 해가던 좀 별난 단골이었다. 동네 토박이도 대학생도 아니었다. 상경 후 저렴한 월세를 찾아 근방의 고시원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연고도 이웃도 없이 떠도는 마음이 데면데면해서였을까. 동네에 쉬이 정을 붙이지 못했다. 일과를 마치고 밤늦게야 덮밥을 포장하러 갔다. 한 끼 포장이면 하루치 나눠 먹으며 든든하게 버틸 수 있었다.
늦은 밤, 분식집 문을 열면 밥 짓는 훈기가 나를 와락 안아 주었다. 이모님이랑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가 학창 시절 유학했던 곳이 이모님 고향인 걸 알았다. “전라도에서 유학했는데 본가는 강원도고요. 근데 가족들은 흩어져 살고…이래저래 복잡해요.” 이모님은 갓 지은 밥을 살살 퍼담으며 말했다. “사연이 많은가 보네. 사는 게 참 그렇지. 그래도 어디라도 따순 데 맘 붙이고 살다 보면 살아진다.” 덮밥처럼 덮어두면 동향 사람이라고 한 주걱 더 담아주었다.
설을 앞두고, 집엔 내려가느냐고 이모님이 묻기에 대답했다. “연휴도 짧고 바빠서요. 혼자 보내요.” 명목은 취업 준비였지만 안팎으로 사정이 여의찮았다. 그러자 이모님이 꽁꽁 묶어둔 봉지를 내밀었다. “나물 조금 무쳤어. 설에는 여기도 문 닫으니까. 추석보단 설이 더 마음이 쓰여. 겨울이라 춥잖아. 추운데 배고프면 서럽거든. 그저 맛있게 먹어. 복 많이 받고.” 양손 묵직하게 돌아가던 겨울밤. 그믐달이 빙그레 웃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단칸방에 달랑 나 혼자였어도 설날에는 나물 비빔밥을 비벼 먹었다.
어느덧 십수 년이 지났다. 분식집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 동네는 찾아갈 일이 없다. 이모님은 잘 지낼까. 고향에 돌아갔을까. 은혜는 어떻게 갚을까. 돌아보니 ‘그래도 맘 붙이던 따순 데’가 내게도 있었다. 복은 베푸는 거라고 이름도 모르는 이모님이 알려주었다. 마음 쓰는 데 인색하지 말자. 덮어두고서 베풀며 살아야지. 빙그레 웃는 그믐달을 올려다본다. 밥 짓는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 지금에야 속절없이 뭉클, 마음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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