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서점이 자생하기 어려운 시대, 수요층이 제한적인 독립 출판물을 다루는 곳은 더욱 그러하다. 강연, 카페 등을 접목해 수익성을 도모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갓 오픈한 이곳은 아주 독특한 기획을 내놓았다. 이름하여 ‘일일 책방지기’. 애서가라면 한 번쯤 꿈꿔 봄 직한 ‘책방 주인’의 로망을 실현할 기회였다. ‘나만의 큐레이션으로 서가를 꾸미고 음악을 선곡해 손님을 받는다.’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신청하고 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런 내게 사장님은 말했다. “무지 쉬워요. 책방지기의 일은 주로 기다림이에요.” 나는 답했다. 그건 자신 있다고.
알고 보니 내가 1호 책방지기였다. 시간 맞춰 문을 열고 SNS에 홍보 게시물을 올렸다. 음악도 추천 도서도 부랴부랴 구색을 갖춰 놓았는데 손님은 오지 않았다.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계단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오고 가는 기척에 귀를 기울이고 불편하지 않게 말을 건네거나 건네지 않았다.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책에 당황하기도, 오래 만지다 구매 없이 떠나는 손님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몇몇과는 가볍게 담소도 나누었다. ‘책방 주인’으로 오해받는 일이 내심 즐거워 끝에 이르러서야 이실직고하곤 했다. “실은 저도 손님이에요.”
그날 아침, 문을 나서는데 남편이 말했었다. “무슨 아르바이트를 돈을 내고 해?” 놀랍게도 그 전까진 마냥 신난 나머지 그런 발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기획의 힘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떤 일일 아르바이트는 돈을 내고라도 하고 싶다고. 어느덧 30대 중반, 갈수록 다른 직업 세계에 대한 기회도 상상력도 빈약해진다. 지나온 삶의 궤적이 다음 선택지를 재단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것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대개 그 경로를 이탈해야 하는데, 치러야 할 기회비용은 날로 커져만 간다.
책과 방송, 인터뷰 같은 간접 체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어지간한 확신이 있지 않고서는 이미 확보한 선택지를 접어두고 달려들기란 쉽지 않다. 대체로 정기성을 띠는 아르바이트에 도전하는 것도 사실은 퍽 부담스러운 일이다. 물론 고작 ‘체험’으로 적성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고작 ‘체험’이 아니라면 평생 가늠조차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일일 게스트하우스 사장, 일일 기자, 일일 라디오 PD 같은 것들을 나는 실없이 꿈꾼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무얼 하고 싶냐고. 나는 더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인턴십을 경험해 볼 것이라 답한다. 제일 효율적인(시간당 벌이가 좋은), 효과적인(‘스펙’에 도움이 되는) 것만 선별한 경험 말고, 지금은 지척에도 닿을 수 없는 세계의 직업들을 얕게나마 넓게 기웃거려 볼 것이라고. 취직만 하면 올 줄 알았던 ‘맘껏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은 영영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6시, 서점 문을 닫으며 사장님께 메시지를 남겼더니 답이 왔다. ‘오 마이 갓! 책을 엄청 많이 파셨네요! 우수 책방지기시라 다음에 꼭 또 뵙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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