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빚을 낸 가계대출 다중채무자 수가 역대 최대다. 이들 4명 중 한 명은 최소 생계비를 뺀 대부분의 소득을 빚 갚는 데 쓴다. 빚에 짓눌린 취약계층 중에선 불법 사채의 함정에 빠진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영끌’을 자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정책들을 양산하고 있다.
작년 9월 말 현재 은행, 제2금융권 등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가계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는 450만 명으로 한국은행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가장 많았다. 빚을 돌려막느라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거나, 집을 사면서 여러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은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전체 가계대출자 가운데 다중채무자의 비중도 23%로 역대 최대였다.
문제는 고금리로 이들의 상환 능력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점이다. 작년 3분기 다중채무자의 26%인 118만 명은 소득 중 원리금 상환액 비중이 70%를 넘었다. 이 정도면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소비만 하고 남는 돈 전부를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쓰는 수준이다. 금리가 크게 낮아지지 않는 한 상황이 개선되기 어려운데, 당초 3월로 기대됐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개시 예상 시점은 계속 뒤로 미뤄지고 있다.
여러 곳에서 빚 독촉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연 이자가 수백∼수천 %에 이르는 불법 사금융의 함정에 빠져들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미 다중채무자면서 소득이 하위 30%에 속하고, 신용점수까지 낮은 취약차주의 비중이 3년 만에 최고로 높아진 상태다. 정부는 다중채무자를 지원하기 위한 저리 대출 전환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불법 사금융 피해를 줄이기 위한 철저한 단속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무분별한 대출을 자극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것은 정부나 정치권 모두 자제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증시 부양을 위해 일관성도 없고 장기적인 효과도 의문시되는 정책을 마구 쏟아내면서 증권사에서 신용거래융자를 받아 ‘영끌 투자’에 나설 채비를 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부채 증가라는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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