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딸이 들려준 얘기다. 반 아이들이 발야구를 하는데 장애로 발달이 더딘 친구가 타자로 나섰다. 이 아이가 공을 어렵게 발로 건드리자 친구들이 “홈런”이라고 박수 치며 응원해 줬다. 발달이 더딘 어린이가 공을 ‘정발’(정상 발달) 아동만큼 힘껏 뻥 하고 차기는 어려울 터. 친구를 배려하고 응원하는 아이들이 대견했다.
모든 현실이 동화일 수는 없다. 발달이 처지고 늦은 친구를 돌볼 여유가 없어져 가는 통합교육 현장이 더 그렇다. 장애 아동도, 교사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처하는 환경이 하늘과 땅을 오간다. 특수교사가 아들을 학대했다며 이를 녹음해 고소한 웹툰 작가 주호민 자녀와 교사 사건에 대한 의견 차도 극명하다. “학생들 등교에서부터 하교까지 특수교사가 개입하는 것이 많다. 전체적인 맥락을 보고 (학대 여부를) 판단해야 된다”는 말도, “피해자의 인지 능력과 표현력이 또래보다 현저히 떨어져 아동학대 범행을 스스로 방어할 수 없어 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판결도 논리 구조를 갖추고 있다. 피해는 아이들 몫이다.
차라리 이 다툼에 드는 에너지의 일부분만이라도 발달장애 아동 교육 문제의 현실적 난점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는 데 쓰는 게 더 나은 미래의 시작이라고 본다. 특수교사 1명이 담당하는 장애학생 수가 법정 규모를 초과하는 현실을 개선하고 특수학교를 증설하자는 ‘오래된 미래’ 같은 그런 얘기들 말이다. 이미 십수 년 전 자폐성 장애 얘기를 다룬 영화 ‘말아톤’의 감독 정윤철이 “기저에 깔린 구조적 모순과 을(乙)과 을(乙)의 싸움이 지닌 무의미함과 비극성은 영화 ‘기생충’에서 이미 봤다”고 한 것은 이런 이유일 테다. 그는 “많은 발달장애 아이들이 집 근처에서 편안히 등교할 수 있도록 특수학교를 대폭 증설하고 예산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언론과 여론이 힘을 쏟길 바란다”고도 했다.
실제로 몇 해 전 장애인 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지역 여론에 어머니들이 눈물로 무릎 꿇은 뒤 한 학교가 겨우 문을 열었다. 갖은 진통 속에 접점이 모였다. 지역 사회의 반대 여론도 새겨들을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누군가 낙오하지 않도록 공동체 사회 안전망의 울타리를 조금 더 튼튼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고도 본다.
이번 사건에도 개인1(교사)과 개인2(학부모)의 대립만 부각된다. 머리를 맞대야 할 정치권에선 막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 오태원 부산 북구청장은 지난달 17일 발달장애 문제를 얘기하면서 “죄가 있다면 안 낳아야 하는데 왜 낳았노”라고 했다. 흔히들 정치를 차악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현실 개선의 꿈조차 꾸지 않는다면, 그런 정치는 무엇이고 무슨 이유로 존재하는가. 게다가 이 사람은 조용히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받았고, 이 정당의 윤리위원장은 이후 총선에 뛰어들었다.
양지 좇는 웰빙 정당 소리를 듣는 국민의힘의 이런 모습에선 민생도, 약자 동행도, 그토록 갈망하는 중도 확장도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간의 긴장이나 김건희 여사 논란 등 굵직한 이슈와 거대담론이 총선 승패를 좌우한다고들 하지만, 기실 이런 경솔한 언행이 알곡처럼 쌓여 4월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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