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몰디브다. 독자들이 상상하는 비싼 리조트가 아니고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다. 숙소에 별도의 교통수단이 있지 않아 필자가 알아서 페리를 타고 찾아왔어야 하는 그런 곳이다. 현재 머무는 마푸시란 섬에는 대충 3000명이 체류하고 있다. 그중 과반수는 휴가를 보내러 온 관광객, 그리고 방글라데시 등 외국에서 온 노동자다.
몰디브에는 대사관이 따로 없어 스리랑카 한국 대사관이 몰디브 대사관도 겸임하고 있다. 사실 필자는 불과 며칠 전 스리랑카에 있다가 몰디브에 온 것이었다. 스리랑카에 갔던 이유는 몰디브와 다르다. 출장이었다. 이틀 동안 불교 유적과 자연 경치를 촬영했다. 그런데 촬영 내내 머릿속에선 같은 장면이 맴돌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스리랑카에서 온 블랑카입니다!” “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 이들 대사는 20년 전쯤 한 지상파 방송 개그 프로그램에서 스리랑카 외국인 노동자 캐릭터를 연기한 개그맨이 유행시킨 말이다. 그는 한국 직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애환을 주제로 삼았는데, 무시당하고 때론 착취당하는 제3세계 출신 외국인 노동자를 대표했다.
한편 몇 년 전 유튜브 ‘희철리즘’ 채널에는 실제 스리랑카 외국인 노동자가 나와 화제가 됐다. 수다스라는 스리랑카인이었다. 그는 수원의 한 공장에서 10년간 일하고 번 돈으로 스리랑카에 돌아가 임대, 식당 사업 등을 하며 경제적으로 부유해져 이제는 아무런 문제 없이 살게 되었다고 했다. 사실 이번 출장에서 그 수다스 씨를 꼭 만나 함께 영상을 찍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만남을 이루지 못했다. 그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 “스리랑카에서 한국으로 온 블랑카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앞서 몰디브, 그리고 이어서 스리랑카를 언급한 이유가 있다. 몰디브는 최근 한국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단순 노동력의 부족이다. 다만 한국만큼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다. 자국 노동력의 빈자리를 인근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잘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몰디브는 종교·문화적으로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들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큰 반감이 없다.
한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라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보니 북한 말고는 한국과 같은 문화권의 국가가 없어 보인다. 한국은 향후 유럽과 같은 일을 겪을까 봐 우려하고 있다. 유럽에서 이민은 큰 사회적 문제다. 특히 독일-오스트리아에서는 튀르키예 계통 이민자, 프랑스에서는 아랍계 이민자 문제가 상시 터지고 있다.
한국도 당연히 이런 유럽의 모습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한국인들은 이미 조선족 유입으로 인한 문제를 겪어봤다. 같은 민족적 배경을 갖고 있는 조선족과의 융화도 쉽지 않은데, 유럽처럼 아예 이민족을 들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픈 점이 있다. 유럽의 사례 때문인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라고 하면 흔히 아랍계 혹은 이슬람계 이민자를 떠올린다는 점이다. 사실은 위에서 소개했던 블랑카, 수다스 씨 같은 동남아 불교계 이민자도 엄청 많다. 이들은 한국과 문화도 비교적 유사한 동남아 국가 노동자이다.
이민 문제를 고민할 때 유럽만 봐선 안 된다. 한국의 상황은 다를 수 있다. 이민 관련 법안을 제대로 만들어 사전 준비를 탄탄히 한다면 이민청은 분명 한국 사회에 도움을 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의 준비도 필요하다. 20년 전 개그맨이 연기했던 블랑카가 유행시킨 말처럼 ‘사장님, 나빠요’를 외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어서는 안 된다. 이제 한국에 온 스리랑카 노동자들은 블랑카처럼 지내기보다는 수다스 씨처럼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이민자가 급증하면 다시 블랑카 같은 노동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정치권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민들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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