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당 의원은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 경촉법)을 두고 이같이 평가했다. 그의 말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법 제정을 돌연 무기한 연기한 이유 중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당초 공정위는 의원 입법 형식으로 빠르게 법 제정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권에선 정보기술(IT)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만큼 굳이 논란을 키워 4월 총선 표를 깎아 먹을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플랫폼 경촉법과 달리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된 법안들은 이미 여당 의원들이 발의를 마쳤다.
플랫폼 경촉법은 공정위가 “법 제정이 늦어지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다”고 했던 법이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소수의 공룡 플랫폼 기업을 ‘지배적 사업자’로 미리 지정하고 끼워팔기 등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는 게 핵심이다. 일부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자를 몰아내기 위해 해온 반칙들을 사전에 방지해 부당하게 독점력을 키우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법의 기본 뼈대인 지배적 사업자 사전 지정 제도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법 제정 자체를 백지화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폐지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디테일에 대해선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15일 “플랫폼 경촉법과 관련해 주요 파트너들이 공식, 비공식 우려 사항을 제기하고 있다”며 “통상 마찰이 발생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 규제가 통상 문제가 돼 한국의 통상 정책 역량이 떨어지는 문제를 지적하며 플랫폼 경촉법을 예로 들었다.
플랫폼 경촉법을 둘러싸고 통상 마찰 우려가 커지는 건 운영체제(OS)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구글,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가능성이 큰 탓이다. 미 재계를 대변하는 미 상공회의소는 플랫폼 경촉법에 대해 무역 합의를 위반할 수 있다며 공개 반대에 나섰다. ‘트럼프 2기’가 들어설 경우 유력한 국무장관 후보로 꼽히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미국엔 손해이고 중국 공산당에는 선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플랫폼 경촉법에서 금지하게 될 불공정 행위들은 현행법으로도 제재할 수 있다. 그런데도 공정위가 별도 법 제정 추진에 나선 데는 이미 강화된 독점력을 되돌릴 수 없을 때 제재가 이뤄져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쟁사인 ‘원스토어’에 게임사들이 게임을 출시하지 못하도록 한 구글에 대한 제재는 공정위 조사 개시 이후 5년 만에 이뤄졌다. 구글은 421억 원의 과징금을 물었지만 경쟁사 제거 비용치고는 적다는 말들이 나온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선 필요한 법인 셈이다.
공정위는 플랫폼 경촉법 제정을 공식화한 이후에도 두 달 가까이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하는 구체적인 기준과 금지되는 행위를 했을 때 적용되는 제재는 정부만 알고 있다. 다시 의견 수렴을 거치게 된 참에 정부안을 명확히 밝혀 ‘깜깜이 입법’ 논란부터 걷어내야 한다. 그것이 업계와 국회를 설득하고 통상 마찰 우려를 해소해 크게 꺾인 법 추진 동력을 다시 살려내는 출발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