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을 닮아야 좋은 국가”[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35〉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0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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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고통인 일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기도 한다. 서글프고 어이없지만 때로는 현실이 그러하다. 그런데 아무리 다른 사람의 고통이라 해도 그것이 어떻게 자신의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한 반목과 악의에 원인이 있다. 플라톤의 ‘국가’를 보면, 소크라테스가 그러한 분열적 현실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아야 제대로 된 국가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상적인 국가에서는 누군가의 고통과 눈물이 나의 고통과 눈물이고, 누군가의 성공과 실패가 나의 성공과 실패라는 것이다. 그가 국가에 가장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마저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분열이다. 그 분열이 감정의 공유를 가로막는다. 그에 따르면, 국가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가능한 한 모든 시민이 기쁨과 고통을 공유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개인을 닮은 국가”가 좋은 국가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을 다쳤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몸 전체가 고통을 느낀다. 손가락이 몸의 유기적인 일부이기 때문에 몸 전체가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고통만이 아니라 기쁨이나 즐거움 같은 다른 감정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분이 느끼는 기쁨이나 즐거움은 전체가 느끼는 기쁨이나 즐거움이다.

소크라테스는 국가를 인간의 몸에 비유하며, “훌륭하게 경영되는” 국가라면 손가락과 몸의 관계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몸의 한 부분이 경험하는 것을 몸 전체가 유기적으로 느끼듯, 개인이 느끼는 감정들을 모든 시민과 국가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개별 시민에게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일어나면, 개별 시민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고 전체로서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국가가 좋은 국가”이다. 국가도 인격체여야 한다는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2000여 년 전에 했던 말이지만, 국가가 개인의 상처와 고통을 자기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고 소중하다. 우리가 지독한 불신과 냉소와 증오의 시대를 살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소크라테스#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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