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실이 지난달 2일 윤석열 대통령의 새해 첫 대외 일정을 한국거래소 개장식 참석으로 잡은 데에는 다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다. 윤 대통령이 연초 증시 개장식에 참석한 건 2022년 대선후보 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함께 방문한 뒤 두 번째, 역대 현직 대통령 중에선 처음이었다. 그날 윤 대통령은 내년 시행될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의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각종 악재를 돌파하고, 4·10총선에 대비하기 위한 카드로 개미투자자 표심 잡기를 선택한 셈이다.
작년 11월 공매도 금지, 12월 주식양도소득세 부과기준 조정에 이어 금투세 폐지까지 꺼내들었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한국 증시의 1월 성적은 주요 20개국(G20) 중 꼴등이었다. 그래서 곧이어 나온 게 일본 증시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다음 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들의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을 독려하는 내용이 담긴 증시 부양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총선 개입, 포퓰리즘 논란을 무릅쓰면서 정부 여당이 개미투자자 구애에 나선 이유는 분명하다. 재작년 말 기준 한국의 주식투자자 수는 4년 전 560만 명의 2.5배인 1424만 명. 4월 총선 유권자의 30%가 넘고 경기도 인구보다 많다. 총선의 승패를 가를 2030세대 비중이 그중 32.6%로 40대(22.9%), 50대(21.2%), 60대(12.4%)를 크게 웃돈다. 정부 여당 지지율이 최근 상승세로 돌아선 데에 정부의 증시부양책에 대한 기대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정부의 증시 정책 공세에 제일 속 쓰릴 사람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대선후보 시절 유튜브 경제채널에 출연해 30년 전 주식, 선물 투자 경험을 공개하고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성공해 본전을 찾고 돈을 꽤 많이 벌었다”고 했던 그다. 주가조작·시세조종 등 불공정 행위를 없애고 장기 투자자에 대한 혜택을 확대해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본인 명의로 증권사 계좌 한번 만들어본 적 없을 것 같은 윤 대통령보다 훨씬 증시 친화적인 태도였지만, 대선 패배 후 이렇다 할 증시 대책을 내놓거나 추진하지 못했다.
조만간 민주당도 관련 공약을 내놓을 전망이다. 문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책으로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방안 대부분이 민주당 정책기조와 아귀가 안 맞는다는 점이다. 기업 오너들이 낮은 주가를 선호하도록 만드는 최고 60%의 상속세율(경영권 프리미엄 포함)을 내리자는 주장이 만만찮은데 ‘부자감세 반대’가 당론이 돼버린 민주당으로선 용인하기 어렵다. 기업의 배당, 투자 여력을 높일 법인세율 인하도 같은 이유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자사주 소각 강화는 기업 경영권 방어수단 확충과 함께 진행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큰데 당 안에서 ‘대기업 특혜’란 반발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소액주주를 위한 기업의 배당 확대 강제 방안을 검토할 수 있겠지만, 제 이익만 챙기려는 행동주의 펀드에 멍석을 깔아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증시 대책을 통해 정치권이 공략하려는 MZ세대는 한국의 이전 어떤 세대와도 경제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 4050세대와 달리 탈(脫)이념, 기업친화 성향을 띠는 이유 중 하나가 자산투자에 대한 관심과 경험이다. 주가에 도움이 된다면 부자 투자자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도 찬성한다. 한국보다 지정학 리스크가 훨씬 큰 대만 증시의 약진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이들에겐 ‘남북관계 개선이 주가를 높일 것’이란 식의 어설픈 주장도 먹혀들기 어렵다. 뒤늦게 나올 민주당식 밸류업 대책이 MZ 개미투자자들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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