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재원 확보 방안도 없는 이른바 ‘묻지 마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제까지 국민의힘이 발표한 총선 공약 11개 중 6개, 더불어민주당 공약 9개 중 6개에는 재원 마련 계산서가 첨부되지 않았다. 주요 공약의 60%에 대해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여야가 입을 닫고 있는 것이다. 공약 중 예산 규모가 제시된 것만 해도 최소 143조 원으로 추산되는데, 실현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고 일단 던지고 보자는 무책임한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와 ‘경로당 주 7일 점심 지급’ 등의 공약에 대해 소요 예산 규모조차 밝히지 않았다. 얼마나 들지 모르니 돈을 어디서 확보할지도 생각해 놓지 않았다. 민주당 역시 ‘도심 철도 지하화’에 80조 원, ‘저출산 패키지’에 28조 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재원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여야는 “우리는 실천할 것”, “재원이야 앞으로 마련해 나가는 것”이라는 식으로 근거 없는 약속만 되풀이하고 있다.
여야의 선심성 공약 경쟁은 마치 도박판에서 판돈을 올리듯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한쪽이 공약을 내놓으면 다른 쪽이 더 많은 돈이 드는 비슷한 공약으로 맞불을 놓는 식이다. 지난달 31일 국민의힘이 도심 단절 구간의 철도 지하화 공약을 내놓자, 민주당은 바로 다음 날 도심을 지나는 모든 지상 철도를 지하화하겠다고 응수했다. 민주당이 ‘경로당 주 5일 점심 제공’을 내걸자 국민의힘은 “우리는 주 7일”이라고 판을 키웠다.
여야의 일부 공약은 지난 대선이나 총선에서 이미 내놓은 재탕 공약이다. 여당의 총선 공약인 간병비 급여화와 철도 지하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민주당 역시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장병 월급 인상, 지역 대학 활성화 등을 대선에 이어 다시 들고나왔다. 하지만 재원 마련 대책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지난 2년 동안 묵혀 놓다가 선거를 앞두고 별다른 고민과 준비 없이 다시 꺼내든 것이다.
지난해 56조 원의 역대 최대 세수 펑크가 났고, 올해도 정부 예측보다 국세가 6조 원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나라 곳간은 비어가고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상황에서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공약을 마구 던지는 것은 무책임하다. 사탕발림 공약은 아니면 말고 식의 맹탕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실현된다 해도 국민이 갚아야 할 빚 청구서로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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