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원재]의사가 정부를 이기는 방법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2일 2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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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파업 때 희생하거나 대의명분 있어야 이겼다
병원 떠나 의료봉사로 환자 옆 지켰다면 어땠을까

장원재 정책사회부장
장원재 정책사회부장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며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리석은 발상”이라고 했다. 반면 필자가 최근 만난 한 대학병원 보직 의사는 2000년 의약분업 당시를 돌이키며 “정부가 마음먹고 나서니 당할 도리가 없었다. 이번에도 의사단체가 맞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말이 다른 걸까.

의사들이 총파업을 한 것은 2000년 이후 총 3번이다. 굳이 승패로 정리하자면 2000년은 정부가 이겼고 2014, 2020년에는 의사단체가 이겼다. 그러면 언제 의사들이 이기고, 언제 졌을까.

먼저 2000년 의약분업 도입 당시 의사들은 약사 임의조제와 대체조제 근절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도입을 미뤄야 한다며 집단 휴업(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의사단체와 약사단체가 내내 충돌하면서 두 집단이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약품 오남용 방지’라는 대의를 내세웠음에도 의사들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 정부는 그해 7월 의약분업 시행을 강행했다. 또 의협회관을 압수수색하고 김재정 당시 의협 회장을 구속했다. 이후 의사단체 주장을 일부 반영한 합의안이 나왔지만 의사들이 요구했던 의약분업 철회는 실현되지 않았다.

의사단체는 2014년 정부가 원격진료를 도입하려 할 때 두 번째 총파업에 돌입했다. 여론은 파업에 비판적이었지만 동시에 상당수는 “원격의료는 오진 가능성과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크다”는 의사단체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한 방송사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는 “의사들의 집단 휴진이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동시에 59%는 “원격진료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결국 정부는 “의료법 개정을 미루고 시범사업을 하겠다”며 정책을 사실상 포기했다.

그리고 2020년 10년간 의대 입학정원 4000명 확대를 두고 다시 의사들의 총파업이 진행됐다. 당시 국민 상당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고생하던 의사들에게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다. 여론조사에서 의대 증원 찬성 비율도 60% 미만이었다. 처음에 강경 방침을 밝혔던 문재인 정부는 결국 “코로나19 확산이 안정될 때까지 관련 논의를 중단하겠다”며 물러섰다.

정리하자면 의사들이 내건 대의가 공공의 이익으로 받아들여졌을 때,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며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였을 때 국민들은 의사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으로 보였을 때는 반대였다. 그런데 이달 16일 여론조사에서 의대 증원 찬성 의견이 80%에 육박하는 걸 보면 아직까진 후자라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서 더 강한 것 같다.

20일 사직서를 내고 의협회관에 모인 전공의 상당수는 자신들의 행동이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것에 민감해했다. 또 “병원을 떠나고 싶었던 전공의는 한 명도 없다”며 “필수의료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필자는 전공의들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15일 집회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이 밥그릇”이라고 했던 전공의는 예외적인 경우라 본다. 만약 젊은 의사들이 사직서를 낸 후 “환자 옆을 떠나고 싶진 않다”며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의료봉사를 갔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정부가 지금처럼 강제수사를 쉽게 입에 올릴 순 없을 것이다. 근무 병원이든 소외지역이든 환자 옆으로 가기엔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다시 강조하면, 국민을 위한 희생과 대의야말로 의사가 정부를 이길 수 있게 해 주는 무기다.

#의대 정원#의사 총파업#전공의#의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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