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일요일 이른 아침.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82)은 어김없이 야구장에 나와 있었다. 그는 경기 성남시 대원중학교에서 아마추어 선수 두 명을 지도하고 있었다. 야구 예능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열정에 불탄다. 티배팅을 하는 선수들에게 공을 직접 올려 주고, 펑고(수비 훈련을 위해 쳐 주는 땅볼)도 직접 쳐 준다.
김 감독은 2시간 가까운 대화 시간 내내 악력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왼손으로 수십 번 쥐었다 폈다 하다가 힘이 빠졌다 싶으면 오른손으로 옮겨 잡았다. 그는 “펑고를 제대로 치려면 손아귀에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일동포 출신인 그는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한국 프로야구에 큰 획을 그었다. 그가 감독을 맡았던 한국 프로팀만 7개(OB,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SK, 한화)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은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서 코치 고문으로 일했다.
김 감독은 건강관리에 진심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하려면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한다. 집이 있는 서울 성동구 서울숲 주변을 2시간가량 걷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꾸준히 한다. 기억력을 유지하기 위해 과일이나 나무, 꽃, 선수 이름 등을 틈틈이 노트에 적기도 한다.
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 오랫동안 몸담으면서 그는 여러 차례 큰 병을 얻었다. 1990년대 말 쌍방울 감독 시절 신장암 수술을 받았다. SK 감독으로 재임할 때도 신장암 수술 한 번, 간암 수술을 한 번 받았다. 그는 “처음 신장암 수술을 삼성서울병원에서 받았다. 그런데 그곳 복도에서 잠실야구장이 보인다. 수술한 뒤에도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야구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며 “건강은 곧 의식이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니 아프다, 죽는다는 의식이 없어졌다”고 했다.
이후 그는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몸이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병원을 찾는다. 이후 두 번의 암도 조기에 발견하면서 큰 후유증 없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는 “암 수술을 받을 때마다 구단이나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당시엔 경쟁 속에 있을 때니 상대에게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며 “간암 수술을 받고 나서는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경기장에 갔다. 그날 수원에서 열린 경기에서 결국 이겼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나이에 대한 편견도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나이와 관련된 편견은 내게도 항상 따라다녔다. 하지만 내가 SK 와이번스에서 처음 우승한 게 65세 때였다”며 “어떤 조직이든 세대교체가 필요하지만 그 기준은 나이가 아닌 성장하려는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말 그는 ‘인생은 순간이다’라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야구와 인생을 정리했다. 갖고 간 책에 사인을 요청하자 그는 자신의 좌우명이자 상징과도 같은 글귀를 써 줬다. 일구이무(一球二無). 한 번 떠난 공은 돌아오지 않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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