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나무지만 요즘 남부 지방의 소나무 숲은 때아닌 단풍이라도 든 듯 곳곳이 붉게 변색돼 있다. 이른바 ‘소나무 암’으로 불리는 치사율 100%의 소나무 재선충병에 걸려 말라 죽은 나무들이다. 소나무 재선충병이 급속히 확산하면서 경남 밀양을 포함한 영남 일부 지역에선 멀쩡한 소나무 숲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커지고 있다. 10년 안에 국내 소나무 78%가 사라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까지 나온다.
소나무 재선충병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에 기생하던 재선충이 소나무에 침입해 수분과 양분의 이동 통로를 막아 2, 3개월 만에 말려 죽이는 병이다. 치료제가 없어 감염된 나무를 베어내는 방제를 하는데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감염목이 확인된 후 36년간 1500만 그루가 잘려 나갔고 여기에 1조2000억 원의 예산이 들었다. 적극적인 방제로 연간 피해 규모가 30만 그루까지 줄어들었으나 2022년부터 106만 그루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지구 온난화로 매개충의 개체수와 활동 기간은 늘어난 반면 코로나에 대처하느라 방제는 게을리한 탓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소나무 곰솔 잣나무 등 소나무림은 우리나라 산림의 27%를 차지하며 환경 문화 휴양 등 분야에서 연간 71조 원의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고 2540억 원의 임산물을 생산해내는 국민 나무다. 잘라내는 나무가 많으면 산사태 우려가 커지고 바짝 마른 채 잘려 나간 나무들은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된다. 애써 가꾼 소나무 숲을 베어내는 일이 없도록 과학적인 예찰과 신속한 진단으로 감염목을 조기에 발견해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재선충병으로 소나무가 멸종되다시피 했지만 우리나라는 집중 방제가 성과를 내면서 소나무 절멸 위기에 처했던 제주도가 안정화되고 충북 영동, 대구 남구, 경북 울진, 전남 곡성 등이 재선충병이 재발생하지 않은 청정 지역이 됐다고 한다. 체계적인 방제의 가시적 성과는 5년 이후에나 나타나는 만큼 확산세가 진정되더라도 지속적인 예산 투입과 방제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재선충병에 강한 소나무 수종을 개발하고, 소나무림 대신 내화성이 뛰어난 버드나무, 팽나무 등 대체 수종으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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