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은 ‘갈등(葛藤) 심리학’입니다. 갈등을 다루는 전문 분야입니다. 마음 안의 이드(본능, 소망), 초자아(이상, 양심, 처벌), 자아(현실, 조정)가 부딪치면 갈등이 생기고, 풀리지 않으면 장애가 옵니다. 갈등은 사람 사이, 집단 사이, 국가 사이에도 일어납니다. 갈등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눈감고 달려가면 파국을 맞습니다.
‘갈등, 증폭, 파국’의 고리를 끊으려면 악순환의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갈등 해소는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본질을 진솔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서 결론을 내야 합니다. 망설이며 내민 손에는 ‘초청장’을, 다른 손에는 계속 힘을 주고 ‘몽둥이’를 든다면 누가 만나려 할까요? 명분이 옳아도 방식이 틀리면 틀린 겁니다. 겁주고 압박하면 통할 것이라는 기대가 허망함은 자식 키워 본 부모들은 다 압니다. 상대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밥상 챙기기’나 ‘직업윤리 결핍’으로 맹비난하면 갈등 해소의 동반자로 삼지 않고 무릎꿇림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체포’, ‘기소’, ‘구속’ 소리에 가슴이 떨립니다.
둘째, 잘못된 ‘자료 분석’에 바탕을 둔 일방적, 강압적 주장이 갈등의 뿌리라면 체면이 깎여도 오류를 인정해야 합니다. ‘확증편향(確證偏向)’에 사로잡히면 바뀌기가 어렵기는 합니다. ‘확신’의 뒷면은 실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고 두려우면 진실을 외면합니다.
셋째, 충분히 소통했다는 착각에 빠지면 갈등은 증폭됩니다. 급하게 억지로 먹이는 밥은 상대가 토해내거나 억지로 넘겨도 소화불량이 생깁니다. 넷째,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싸움 또는 도피’로 반응합니다. 심하면 ‘자기 파괴’조차 달갑게 받아들입니다. 놀라서 스스로 사라진 사람들을 ‘법’을 내세워 억지로 일 시키겠다는 마음에는 정말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다섯째, 매년 2월, 3월은 우리 의료가 가장 취약한 시기입니다. 차지하는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큰 전공의 인력 중 다수가 떠나고 새로운 다수가 들어와서 일을 시작합니다. 왜 하필 이 시기에 수십 년 동안 힘과 책임을 모두 가진 사람들이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가 첩첩이 쌓은 문제들을 단번에 해치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나요? 시작한 사람들이 자문자답(自問自答)했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누르는 ‘슬로건’ 뒤에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상대가 믿게 된다면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겁니다. 혹시 무엇을 숨기려고 상대를 ‘국민 건강을 볼모로 잡은 인질범’의 틀 안에 가두려 하나요?
여섯째, 어떤 문제이든지 힘이 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보다 책임이 더 무겁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센 사람은 그 힘을 써서 약한 사람을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왼손이니 시끄러운 소리의 책임은 오른손에 전적으로 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조상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겁니다. 누적된 문제덩어리를 차근차근 정리하기 전에 누가 갑자기 불을 붙였나요?
일곱째, 불붙은 갈등 상황을 이용해서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고 날아드는, 이런저런 ‘좋은 말씀’을 남발하는 사람들은 갈등 해소를 진정 원한다면 제발 빠져 주세요. 아니 왜 거기서 갑자기 나오십니까? 이제는 모든 기록이 어딘가에 남으니 세월이 지나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 안다고 자신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신이 낳은 자식도, 자신을 낳으신 부모님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데 정말 알고 하는 말인가요?
여덟째, 같은 분야라고 해도 선배가 후배를 속속들이 이해하거나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습니다. 현대 한국인 삶의 가치는 집단적 정체성 준수에서 이미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넘어갔습니다. 안다고 생각하며 대하면 갈등은 증폭됩니다.
아홉째, 언론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어원이 ‘중간에 서기’(‘미디어’)인데도 한쪽 눈을 감으면 갈등 구조가 더 흔들립니다. 본의 아닌 ‘가짜 뉴스’ 하나로 갈등이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열째, 갈등은 파국이 아니고 배움과 성장을 위해 써야 합니다. 동일 갈등이 반복된다면 힘 있는 쪽에서 배우지 못하고 이전 방식을 되풀이한다는 뜻입니다. 벼락치기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보건복지부는 그 오랜 세월, 산하 병원들을 직접 관리하면서 경험과 교훈을 어떻게 얻었을까요? 교육부는 후유증을 피할 수 없었던 모 사립 의대 폐교와 재학생 재배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책상(冊床)과 임상(臨床)이 서로 맞서서 버티는, 치열한 갈등 상황을 일단 ‘건강한 갈등 관계’로 전환시킬 힘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삼차방정식은 ‘더하기’ 실력으로는 풀 수 없습니다. 방정식 전문가의 주도적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현장 경험을 존중해야 합니다.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의료인이 모여 밥을 먹는다면 밥값은 누가 계산할까요? 힘 약한 사람이 낼 겁니다. 다시 밥 먹자고 모일 수 있을까요? 밥상이 깨지면 허기집니다. 우리 모두에게 파국일 뿐입니다. 머리를 비우고 어깨에 힘 빼고 빨리 만나서 대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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