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를 착용한 여인이 하얀 개를 안고 서 있다. 개는 오직 주인만 바라보는 반면, 여자는 몸만 개를 향한 채 화면 밖 관객을 힐끗 쳐다보고 있다. 개 목을 묶은 파란 끈이 둘을 다정하게 이어준다. 귀족처럼 호화롭게 차려입은 이 여자는 대체 누굴까?
‘개를 든 여인’(1769년·사진)은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거장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30대 시절 대표작이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을 비롯한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화가로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그렸다. 하얀 레이스 칼라가 과하게 높이 솟아 있는 분홍색 실크 드레스는 당시 유행하던 옷이 아니다. 17세기 프랑스 왕비가 입던 궁정 의상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 그림은 프라고나르가 37세 때 그린 ‘환상 인물’ 연작에 속한다. 총 18점으로 구성된 연작에는 책 읽는 소녀부터 배우, 가수, 화가, 장군, 귀부인 등 다양한 직업과 신분의 사람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환상 속 인물을 그렸다고 해도 모델은 있었을 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화가의 누이나 이모 등 가족을 모델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그에겐 누이도 이모도 없었고, 딸도 태어나기 전이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모델은 마리 에밀리 코이네 드 쿠르송이라는 귀족 여성이다. 귀족들이 사교를 위해 모이던 살롱의 주인으로 이 그림을 의뢰한 고객이었다. 화가는 50대 귀부인을 밝고 경쾌한 붓질로 아름답고 우아하게 표현했다.
이 그림의 가장 놀라운 점은 제작 기간이다. 화가는 뛰어난 기교를 과시하기 위해 한 시간 이내에 완성했다. 하도 빨리 그려서 생전에 ‘속도의 거장’으로 불렸다. 빠른 붓질로 그렸지만 인물의 얼굴 표현에는 정성을 다했다. 후원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관심받기 위해 오직 주인만 바라보는 개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어쩌면 이 그림은 후원자를 향한 충성심을 드러낸 화가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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