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으로 중요한 11대 분야 136개 핵심 과학기술에서 한국의 수준이 처음으로 중국에 역전당한 것으로 평가됐다. 10년 동안 한국이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4.7년에서 3.2년으로 1년 반 좁히는 사이에 중국은 6.6년에서 3.0년으로 크게 단축하며 한국을 추월했다. 중국이 한국을 추격하던 시대가 이미 끝났다는 평가에 서늘함마저 느끼게 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년마다 주요 5개국(한국·미국·유럽연합·일본·중국)을 비교해 발표하는 기술수준평가를 보면 2022년 기준으로 1위인 미국의 수준을 100%로 봤을 때 중국은 82.6%, 한국은 81.5%였다. 2020년에는 0.1%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한국이 앞섰는데 처음으로 뒤집힌 것이다. 중국이 달리는 동안 한국은 기어갔다.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경우 2012년 미국의 67.5% 수준이었던 중국은 10년 뒤 87.9%까지 따라잡았다. 같은 기간 한국은 82.2%에서 82.6%로 제자리걸음을 보였다.
50개 국가전략기술을 추려 평가하면 중국의 기술 수준은 86.5%로, 한국(81.7%)은 물론 일본(85.2%)까지 뛰어넘었다. 양자컴퓨팅, 우주항공, 인공지능(AI)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차전지 분야에서만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우주항공·해양 분야의 경우 2020년 8.6년이던 미국과의 기술 격차가 2년 새 11.8년으로 크게 벌어졌다.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 정책을 내세운 이래 첨단 산업에 인재와 예산 지원을 집중하며 기술 수준을 높여 왔다. 그 결과 지난해 중국은 전기차를 앞세워 세계 자동차 수출 1위를 달성했고, AI, 로봇 등 미래 핵심 산업에선 미국과 경쟁하고 있다. 올해 초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에 이어 어제 폐막한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도 중국 기업이 대거 참가해 기술력을 과시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때 연구개발(R&D) 모범생이던 한국의 기술 경쟁력은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며 쉬운 과제에 집중했고, 민간 R&D 투자를 활성화할 규제 완화와 금융 지원은 미흡했다. 지난해 정부는 충분한 준비 없이 올해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과학계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지금부터라도 도전적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인재 양성에 매진해야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첨단기술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