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창의력의 시대’다. 키오스크(무인 단말기)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로봇이 서빙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AI) 출현으로 로봇이 최적의 판단을 내리는 시대도 열리고 있다. 앞으로 청소 요리 같은 단순 작업뿐만 아니라 판결문 작성 등 논리적 사고력이 필요한 업무까지 컴퓨터와 로봇이 대체할 것이다. AI 덕분에 업무 효율성이 증대되고 편리해져 향후 인간이 더 자유로워질 것이란 낙관론이 나온다. 반면 결국 인간이 기계에 종속될 것이란 비관론도 존재한다.
현재 한국 학생들은 표준적인 과정을 수행하는 데 강점을 보인다. 수학 문제를 접하면 유형을 파악하고 숙련된 절차에 따라 정답을 찾는다. 한국의 인적 자본은 효율적 교육시스템에서 훈련됐다. 그러다 보니 정답이 없는 문제를 놓고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탐구심은 사치스러운 일이 됐다. 산업화 시대의 숙련된 일꾼을 육성해 온 효율적 교육시스템은 창의적 미래 인재를 육성하는 데 이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학과별로 정해진 표준 교육과정에 따라 생활한다면 대학은 창의적 미래 인재가 아니라 숙련된 산업화 시대에 필요했던 인력만을 양성하게 될 것이다. 학생들은 전공이란 학문체계에 갇힐 수밖에 없다.
결국 해답은 비정형적 교육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는 자기 주도적 탐구심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 입시란 비뚤어진 경쟁체제가 장악한 중등교육에서 온전한 교육의 장을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으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렇다면 대학 교육만큼은 학생 스스로 자유롭게 과정을 즐기며 해답을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창의력 시대에 걸맞은 고등교육이다.
정부는 최근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른바 ‘무전공 입학’이라고 불리는 ‘전공자율선택제도’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 대학과 KAIST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대학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방황이 용인되는 시기다. 대학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건 청춘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일 수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여러 해답을 고민할 기회를 박탈해선 안 된다. 때로는 실수하고 돌아가겠지만 이런 과정이 인생의 근육을 만들어 줄 것이다. 더욱이 초중고교 시절 자기 주도적 탐구 경험이 부족했던 학생들에게 전공자율선택제도는 창의적 역량과 태도를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정도로 대학 혁신을 마쳐선 안 된다. 학과 간 벽을 허물고 지속적으로 교육과정을 융합하는 등 새로운 시도와 접근 방식에 대한 대학의 총체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 개인별로 맞춤화된 교육 성과를 인증할 수 있는 제도적 혁신 등이 이어져야 한다. 대학 혁신의 지향점은 결국 학생들이 입학부터 졸업까지 전 과정에서 자유롭게 탐구하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첫 단추로 그쳐서도 안 되겠지만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한다면 대학 혁신은 또다시 요원해질 것이다. 창의력의 시대를 살아갈 미래 인재를 위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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