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정부 관계자를 만나면 한결같이 듣는 질문이 있다. “한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중 누굴 더 선호하느냐”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국에 확산되고 있는 ‘트럼프 2.0’에 대한 우려는 미국 내에서도 상당히 신경 쓰는 의제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나 대외 정책에 관한 한 미국인의 결정은 점점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달 28일 로이터통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6%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바이든 대통령보다 낫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선호한다”는 답(30%)보다 6%포인트 높았다.
“미국이 돌아왔다”고 천명한 ‘바이든 독트린’은 바이든 행정부의 국정 핵심축이자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와 비교되는 중요 경쟁력으로 꼽혔다. 굴욕적인 2021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군에도 중국, 러시아와의 강대국 경쟁에 집중해야 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호소는 여전히 미국인 다수의 공감을 받았다.
취임 3년 차를 넘긴 현재 결과는 어떨까.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철군 반년 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지 못했다. 동맹국들을 동원한 대대적인 경제 제재를 내놨지만, 러시아 경제는 전시(戰時) 호황으로 오히려 성장했다.
중동 상황은 더 꼬였다. 이란 핵합의(JCPOA)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의 반발 속에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며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만 키워줬다. 뒤늦게 사우디-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지만 지난해 10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중국 견제의 속도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반도체 규제 등 대대적인 수출 통제를 도입했지만 정작 중국의 군사적 확장에 대응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력 투자 시간표는 갈수록 늦춰지고 있다.
한반도의 우려는 더 커졌다. 지난해 4월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으로 북핵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 조치를 합의한 것은 분명 중요한 성과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빌미 삼아 기존 국제 질서를 완전히 무시하고 북한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을 제공하는 등 미국의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을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수십 년간 실패의 경험을 쌓아온 북한에 러시아가 열어준 작은 틈새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미 동맹 복원 정도는 어떨까. 적어도 경제통상 분야에선 합격점을 주기 어렵다.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의 계승’이라는 비판을 받는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야심 차게 출범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유명무실해졌고 유럽과의 철강 협상 등 중요한 통상 합의 또한 모두 실패했다.
이렇다 보니 올 11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해도 미국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던 시대로 되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 싱크탱크 ‘시카고카운슬’의 이보 달더르 회장은 “유럽 동맹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믿는 마지막 미 대통령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미 유럽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여부와 무관하게 ‘자체 핵우산 구축’ 등의 자강론이 나온다. 북핵을 머리에 짊어지고 사는 우리에게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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